최근 심마니가 실시한 ‘락앤락’ 음반에 대한 투자자금 공모는 불과 2분 만에 조성 완료됐다. 외국영화인 ‘툼레이더’ 공모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는 20일 모집 예정인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에 대한 공모도 5분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회사측은 내다보고 있다.
요즘 문화콘텐츠에 대한 투자열풍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문화콘텐츠 투자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아지자 기획에서 수익정산까지 맡는 문화콘텐츠 관리업체가 등장하는가 하면 환금성 보장을 위한 ‘풋옵션제도’가 도입되고, ‘콘텐츠채권’을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매매하는 콘텐츠거래소까지 생겨났다.
생명공학, 나노기술, 환경기술, 정보산업과 함께 국가 발전을 좌우할 차세대 5대 산업 중의 하나로 꼽히는 문화콘텐츠산업에 돈이 몰리고 각종 지원책이 마련되는 건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대박속에는 항상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얼마전에는 영화 ‘나티’에 투자했던 300여명의 투자자들은 영화관계자들이 잠적하는 바람에 100억원의 자금을 날렸다. 또 인터넷 등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공모 열풍도 불고 있다. 마치 2년전 벤처붐의 중심에 서서 투자를 주도하던 인터넷 열풍과 유사하다.
투자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흥행대박을 꿈꾸며 무조건적인 투자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투자유치설명회 ‘디지털콘텐츠프로모션 2001’에 참가한 기업들조차도 스스로 함량미달인 기업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행사의 한 관계자는 “66개 문화콘텐츠 회사 중 36개사를 선정해 투자설명회를 개최했지만 이중에서도 투자할 만한 업체는 소수에 불과했다”고 귀띔했다. 그만큼 제대로 된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좋은 콘텐츠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문화콘텐츠 분야의 경우 자금과 함께 충분한 인프라(데이터베이스 등)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과 창작인력이 뒷받침돼야 어느 정도 성공을 예측할 수 있다. 단순한 아이디어만으로는 성공을 기대할 수가 없다.
실패확률도 기존의 IT분야 투자보다 결코 높지 않다. 연간 제작되는 수백편의 영화 중 대박을 터뜨리는 작품은 2, 3편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게임, 애니메이션 등 아직까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분야는 더욱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벤처캐피털쪽에서만 수천억원의 자금이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으며 문화관광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자금을 합치면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문화콘텐츠쪽에 몰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공급 과잉에 따른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또 이같은 공급과잉은 필연적으로 ‘묻지마 투자’를 불러오고 있다.
실제 문화콘텐츠 투자에 열을 올리는 벤처캐피털 중 전문 심사역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곳이 부지기수다. 다른 쪽에서 투자하면 같이 묻어 간다는 식이다.
지원과 육성도 좋지만 급하다고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 날림공사를 하면 세계시장 진출은커녕 국내시장도 지키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