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낙경의 벤처만들기>(16)K군의 벤처 방랑기

 얼마전 테헤란밸리를 걷다가 지난해초 잠시 창업상담을 했던 K군을 우연히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을 들며 여러가지 얘기를 나눴다. 최근 그의 근황을 물으니 “이제야 방랑생활을 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대신했다.

 K군은 전형적인 70년대생 젊은 벤처인이다. 대학졸업과 벤처붐이 맞아 떨어져 꽤 어린 나이에 창업을 경험했던 조금은 부러운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남부럽지 않은 학벌과 재능, 집안배경을 가진 그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벤처에 입문한 것이 이미 흥미있는 이야기거리가 아닐만큼 벤처는 새로운 문화이자 사회현상이 됐다.

 하지만 그 친구가 털어 놓은 ‘벤처방랑기’를 들으면서 지난 2년간 우리 사회를 격랑으로 몰고 간 벤처열기와 지금의 텅빈 자리에 대해 K군의 말을 빌어 몇가지 정리해 볼 것들이 있었다.

 “아이템에 더이상 의존하지 않겠습니다.”

 K군의 경우 지난 99년말부터 음악 관련 콘텐츠사업을 준비하다 동영상 관련 핵심기술을 보유한 A사의 적극적인 구애(?)로 팀 전원이 A사의 자회사인 B사에 몸담게 됐다. K군도 A사의 핵심기술을 응용한 서비스사업을 추진하는 B사의 CEO로서 1년 남짓 활동했지만 결국 복잡한 경영권문제와 시장성 부재로 지난달 회사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아이템이 비즈니스를 설명하는 첫째임에는 틀림없으나 핵심역량을 남에게 의존한 상태에서 즉흥적인 아이템을 들고 사업에 뛰어든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역시 고유의 핵심역량이 있어야 하더군요.”

 소위 인터넷에 기반한 IT업계에서 살아 남으려면 해당 비즈니스에 적합한 핵심역량을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 마케팅과 기획도 중요하지만 핵심역량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IMF 이후 인터넷붐에 편승한 벤처창업열기가 전국을 휩쓸면서 젊은 세대들이 대거 IT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핵심역량과는 거리가 먼 아이디어 창업형이 대부분을 차지해 변화하는 사업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K군도 A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했지만 A사의 복잡한 주주간 이해갈등으로 결국 스스로 기술문제를 풀어가야만 했다.

 “펀딩요? 눈물납니다.”

 일단 최소자금으로라도 사업을 벌이고 나면 펀딩은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라는 무모한 기대감이 더이상 ‘벤처정신’으로 미화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업모델이 검증돼 외부 투자유치에 성공하거나 본격적인 매출발생시까지 사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초기자본은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궁핍함이 벤처의 시작은 될 수 있지만 벤처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K군도 사업을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나면서 컵라면과 이동침대 생활을 내던지고 다시 안정된 직장으로 돌아가고픈 ‘유혹’때문에 무척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K군은 지금 모바일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2년새 벌써 세번째다. 실패를 딛고 새롭게 도전하려는 K군의 자세가 대견하지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부디 이전의 경험이 헛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된 사업으로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송낙경 KTB인큐베이팅 사장 song@ktb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