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대표 윤종용)가 지난해 내외자 조달시스템의 온라인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글로넷’이 당초 설계 미비로 기로에 봉착해 있어 관련업계가 향후 움직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관련업계의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국내기업 중 가장 앞선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은 삼성 글로넷의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방식은 후발업체들에는 반면교사로서 톡톡히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글로넷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취약점은 정해진 거래처와 품목의 구매에서는 효과를 보고 있지만 조달업무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전략적인 신규거래선 확보기능(소싱)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규거래선 확보를 위한 전략구매 고유업무의 온라인화는 글로넷 설계 당시 들어가 있지 않아 이 기능을 추가하려다 보니 전략구매팀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사실 삼성전자는 상당한 돈과 시간을 들여 온라인 외자 조달체제인 글로넷을 내외자 통합체제로 확대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듯 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에만 총 15조원 내외자 구매액에서 3000억원 가량의 경비절감을 글로넷을 통해 이룩했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당초 내외자통합 글로넷 구축에 들어가면서 소싱(전략구매)에 대한 배려없이 기존 거래물품 구매에만 치중하다보니 실질적인 통합온라인화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미 거래선을 턴 곳 외에는 여전히 오프라인 전략구매부서(IPC)에서 신규거래선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각지에 산재해있는 잠재 거래선에 대한 정보와 신규품목에 대한 정보는 글로넷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IPC에 산재돼 있다. 더욱이 글로넷은 이들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화 하더라도 분석기능마저 아직 없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전략구매가 가능한 것은 원자재인 RLC(레지스터·커패시티·인덕터)류에만, 그것도 내자에만 그치고 있다. 정보통신, 멀티미디어, 디지털 가전 등 라이프사이클이 짧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의 신규확보가 전혀 글로넷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지금와서 전략구매기능을 추가해 통합온라인체제를 갖추려하는 과정에서 내부 반발에 직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글로넷에 데이터분석기능 추가작업도 일선 업무의 통합이 보장되지 않아 계속 지연되고 있다.
우선 해외 전략구매를 담당하고 있는 각 권역별 ‘IPC(국제프로큐어먼트센터, 한국을 포함해 7군데)’들이 이제와서 웬말이냐며 글로넷 참여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설사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더라도 글로넷에는 이들 정보를 분석해낼 기능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며 역공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다 IPC의 글로넷 참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책임자인 글로벌프로덕트매니지먼트(GPM)장들마저 의사결정에 미온적이다. 한 관계자는 “구매팀들은 전문가들이 아닌 글로넷 운영팀에 중요한 전략구매를 맡기는데에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사정이 이러한데 다양한 구매품목과 방대한 조직을 갖추고 있는 IPC를 글로넷에 통합하는지 여부를 결정짓기는 쉽지않은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글로넷 내부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수많은 국내외 법인들의 거미줄과 같은 ERP를 글로넷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결코 순조롭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도 문제지만 필요한 인적자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에다 해외 소싱정보를 누가 글로넷에 담을 것이냐라는 내부 논란도 장애가 되고 있다. 글로넷 운영팀에서 담당할 것인지 아니면 일선 각 구매사업부에서 각자 분담할 것인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구매의 핵심인 전략구매기능이 현재처럼 각 사업부문별로나 각 IPC로 분산돼 있을 경우 정보를 통합하기가 힘들고 결과적으로는 데이터 축적도 불가능하다”며 “실무진에서 문제해결이 안되고 있는 만큼 구매를 글로넷 일원화는 결국 책임있는 경영진의 소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