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수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중)성공보다 값진 교훈

 “국내 프로젝트와 해외사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대해야 할 국가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수출대상 국가의 경제환경과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베트남·중국·필리핀·중동·중남미 등 국내업체들이 주요 타깃으로 보고 있는 국가에 가보면 국내에서 실시되는 정보시스템 입찰과정은 그나마 선진적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는 게 SI수출 실무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실제로 사우디 경찰청 프로젝트 입찰에 참가한 LGEDS는 “성지순례 기간에 이어 담당 공무원들이 장기간의 여름휴가에 들어가는 바람에 프로젝트 수주결과 발표가 계속 연기되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SKC&C도 “중국 ITS프로젝트에 사업제안서를 제출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병원 프로젝트 참가를 추진해 온 삼성SDS도 최근 실사과정까지 오는 데만도 2년 가까운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SI수출이 현지시장과 해외 프로젝트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장기 레이스’라는 점은 그간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국내 업계가 가장 뼈저리게 느낀 교훈 중 하나다.

 그럼에도 국내 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해외 프로젝트 수주가 SI업계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인식되면서 해외물량을 확보하려는 업계의 노력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해외 프로젝트 물량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는 국내 업체들의 강박관념은 마구잡이식 사업추진으로 이어지며 덤핑입찰이나 국내업체끼리의 제살깎기 경쟁과 같은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삼성SDS 이강훈 해외사업팀장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만 해도 국내 참가업체들이 전체 프로젝트 규모에 비해 너무 낮은 가격을 제시해 다른 외국 경쟁회사들이 ‘덤핑수주’라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소지를 스스로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분석했다.

 LGEDS 오해진 사장도 “대상 국가의 정치·경제적인 환경은 물론이고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과 대금회수 등 사업수익성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해외 프로젝트를 맡는 것은 자칫하면 회사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해외시장에서 벌어지는 국내업체간 과당경쟁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 99년 계약식을 연기하는 해프닝까지 연출했던 베트남 중앙은행 프로젝트는 차치하고 최근에는 해외사업이 발주되기도 전에 참가여부를 놓고 국내업체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번에 차질을 빚은 베네수엘라 프로젝트에 다른 국내 대기업이 비밀리에 참가를 추진하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떠돌고 있다.

 “중동 및 중남미 지역 SI프로젝트를 놓고 국내 업체들이 벌이는 밥그릇 싸움은 도저히 눈뜨고 못볼 지경”이라는 SI업계 스스로의 불만에서 국내 업체간 공조체제가 어느 수준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LGEDS 김병국 부사장은 “아무런 경험이나 검증받은 노하우 없이 무작정 해외로 나가 경쟁에 뛰어든다면 결국 다같이 망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조정에 나서기 이전에 업체 스스로가 각성하고 서로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마구잡이식 해외사업 추진과 국내 업체간 과당경쟁이 초래할 가장 큰 폐해는 해외시장에서 국내 전체 IT업체에 대한 인식을 떨어뜨리고 이는 곧 SI가 유망 수출품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송두리째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해외정부가 국내 업체에 중요한 정보화 프로젝트를 맡기는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 한국 전체 IT산업이 지닌 저력을 믿는다는 의미이며 이같은 국가적인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국내 업체 모두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SI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