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인디컬처:디지털엔터테인먼트>떠오르는 구산 3D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창작’이 붐을 이루고 있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60∼70년대 고전인 ‘황금박쥐’나 ‘요괴인간’도 국내에서 채색한 작품이라고 하고 전세계에 제작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중 20% 이상이 국내에서 그려진다고 하니 이상하게 들릴 법도 하다. 또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있는 애니메이터는 2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애니메이션을 아는 사람이라면 ‘NO’라고 한다. 이전까지 우리가 그린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디즈니의 TV시리즈물인 ‘101마리 달마시안’은 실제 국내 제작사에서 맡아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한국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기억하는 시청자는 많지 않다.

 답은 간단하다. 그것들은 미국 사람이 미국 정서를 담아 미국 자본으로 기획하고 창작한 작품이다. 물론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미국 것이다. 단지 중간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채색해 넣는 원동화 작업만을 대행해 주었을 뿐이다. 즉 창조 작업에 한 일이 하나도 없다. 단순 하청, 낮춰부르는 말로 ‘그림 공장’이었던 셈이다.

 이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보면 ‘국내 애니메이션 창작 붐’이란 말이 새롭게 들린다. 우리가 기획하고 창조한 콘텐츠만이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의 애니메이션 창작의 선봉에 누가, 아니 어떤 장르가 있는가.

 바로 ‘3차원(3D) 애니메이션’이 우뚝 서 있다.

 3D 애니메이션(Three-Dimensional Computer Animation)은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캐릭터, 배경화면 등을 모두 3차원으로 처리해 보다 현실에 가깝게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최근 국내 개봉된 파이널환타지가 3D 애니메이션이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게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해 움직이는 만화 영상을 만들어 낸다.

 국내 순수 기획력을 가지고 창작에 도전하고 있는 3D 애니메이션 업체는 시네픽스, 에펙스디지탈, 빅필름, 나래디지탈엔터테인먼트, 디지털드림스튜디오, 아이코, 오콘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품은 시네픽스의 ‘큐빅스’다. 로봇 3D 애니메이션인 큐빅스는 지난달부터 미국 지상파 방송인 키즈워너브라더스(Kids! WB) 채널을 통해 매주 토요일마다 방송되고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만든 작품이 애니메이션 본고장인 미국에 진출했다는 것 자체가 이슈다. 특히 오전 10시 30분부터 30분간 방영이 끝나고 엔딩 자막에 뚜렷하게 찍혀나오는 ‘시네픽스’란 이름은 애니메이션 바닥 사람들에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기획에서부터 제작까지 순수 ‘토종’ 애니메이션인 큐빅스를 시작으로 한국 3D 애니메이션의 세계 공략에 막이 올랐다.

 큐빅스는 로봇을 소재로 했지만 기존의 폭력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애완로봇 큐빅스가 주인공 소년 하늘이와 벌이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2040년 버블 타운에 UFO를 타고 정체불명의 외계인이 도착한다. 은하계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만한 강력한 에너지원을 고향별에서 훔쳐온 외계인은 급한 김에 로봇 수리점에 있던 중고 로봇 ‘큐빅스’에 이 에너지를 주입한다. 그 후 큐빅스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힘을 가진 로봇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처음부터 미국시장을 타깃으로 기획했기 때문에 폭력성은 최대한 줄였으며 대신에 코믹, 휴먼, SF액션 등과 같은 요소를 강조했다.

 나래디지탈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해 MBC와 EBS에서 방영중인 3D 스폿 애니메이션 ‘꾸러기 더 키’도 관심을 끈다. 스폿 애니메이션은 1∼5분의 짧은 시간 동안 하나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애니메이션이다. 통상 어린이 프로그램의 꼭지물로 편성되거나 광고시간대에 수시 편성된다. ‘꾸러기 더 키’가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이 스폿 애니메이션을 3D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5분 이내의 기획물이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의 숙제였던 부족한 기획력을 만회할 좋은 장르다.

 ‘꾸러기 더키’는 구름나라 최고의 개구쟁이인 ‘더키’ 이야기다. 구름 공장에서 구름을 만드는 아빠와 기상캐스터인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더키. 그런데 동생 ‘윈디’가 태어나면서 긴장의 연속이다. 사랑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더키는 막 걸음마를 시작한 윈디에게 심통을 부린다.

 나래는 ‘꾸러기 더키’를 영어버전으로 재녹음 작업을 거쳐 EBS를 통해 교육용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해 원소스 멀티유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MBC에서 방영을 끝낸 디지털드림스튜디오의 ‘미래전사 런딤’도 창작 붐을 이끄는 주역이다. 미래전사 런딤(RUN=DIM)은 한국의 디지털드림스튜디오와 일본의 아이디어팩토리가 공동으로 제작비를 투자해 만든 TV용 3D 애니메이션이다. 우리보다 기획력이나 캐릭터 개발에서 한발 앞서는 일본과의 합작을 통해 일본 따라잡기에 나선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작품 주인공으로 한국의 강두타, 일본의 가즈토 등 양국 젊은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가깝고도 먼 이웃’인 양국 시장을 동시 공략했다.

 또 디지털드림스튜디오는 런딤 TV시리즈를 바탕으로 극장용 런딤도 제작을 마친 상태다. 3D 애니메이션의 강점은 한번 컴퓨터로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면서 데이터를 구축하면 다음부터는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극장용이 흥행할 경우 이런 일반론을 입증하는 국내 첫 사례가 된다.

 빅필름의 극장용 3D 애니메이션 ‘엘리시움’도 기대작이다. 제작을 거의 마무리하고 후반작업에 들어간 엘리시움은 12월 미국·캐나다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큐빅스가 지상파TV를 통해 미국을 점령해 가고 있는 ‘지상군’이라면 엘리시움은 영화관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알려 나갈 ‘공군’인 셈이다.

 이밖에 에펙스디지탈의 ‘꼼지’ ‘로보랠리’, 아이코의 ‘아이언딕’, 드림픽쳐스21의 ‘레카’, 프레임엔터테인먼트의 ‘가이스터즈’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의 많은 작품들이 올해 들어 제작됐거나 제작중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직 브랜드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3D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을 때 재패니메이션을 뛰어넘어설 것이다. ‘큐빅스’를 보러 TV앞에 앉는 미국 아이들은 이런 국내 3D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