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재조명](21)전자부품 40년

59년 금성사(현 LG전자)가 진공관식 라디오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을 시발로 태동한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전자·정보통신기기 등 세트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국내 전자부품산업 생산규모(반도체·LCD 제외)는 13조9100원으로 국내 전자산업의 14.2%를 차지했다.

 특히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국산화 지원 및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수출지향형 산업으로 발전, 지난해 전체 전자수출 실적 598억5000만달러 중 9.9%인 59억5000만달러를 차지했다.

 이같은 위상을 갖추고 있는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63년 삼화전기산업(현 삼화콘덴서)이 진공관식 라디오용 콘덴서를 개발하면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삼화전기산업을 효시로 태동하기 시작한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3대 회로부품산업이라 불리우고 있는 트랜스포모·저항기로 확산됐고 이후 PCB·튜너·수정진동자·SMPS·소형모터·브라운관·커넥터·하이브리드 IC 등에 참여하는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60년대초 가내 수공업 형태의 태동기를 거친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69년 국내 전자산업발전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되고 있는 전자공업진흥법이 제정, 발효되고 이어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전자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는 전자 및 부품산업을 육성, 수출 주도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막대한 자금 및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원천기술·자금이 없어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전자 및 전자부품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당시 전자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던 일본으로 자금 및 기술이 국내에 유입되도록 최대한 지원했다. 이때 조성된 마산수출자유지역에는 수많은 일본계 전자부품업체들이 입주,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한축을 담당했으며 구미전자공단·구로공단 등 전자부품 밀집단지가 잇따라 조성되면서 국내 전자부품산업계는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물론 이 와중에 기술·자금이 부족한 국내 전자부품업체는 일본업체와 합작하거나 기술을 도입하는 데 사활을 걸다시피했다. 이같은 흐름은 국내 전자부품이 산업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지만 국내 전자 및 전자부품산업 구조는 대일의존도 심화라는 폐해를 낳기도 했다.

 70년대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대일의존도 극복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대적인 부품 국산화가 추진된 시기라 할 수 있다. 기술자립기반 구축이라는 대명제 아래 일제 부품을 국산으로 대체, 전자제품이 수출효자 품목으로 부상하는 데 일조를 했던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예기치 못한 오일쇼크로 도산업체가 속출하는 시련기를 겪게 된다.

 사상 유례없는 오일쇼크라는 혹독한 시련기를 이겨낸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80

년초 컬러TV 대중화 시대를 맞아 또다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70년대 후반부터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은 컬러TV를 비롯해 오디오·비디오 기기용 부품을 생산, 수출해왔지만 컬러TV는 국내 전자부품산업 기술 및 생산력을 일본에 이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80년대초 불어닥친 3저 호황은 전자부품산업이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으로 등극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이처럼 국내 전자부품이 미국·일본 등 선진국으로 대량 수출되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자국산업 보호라는 미명아래 반덤핑제소 등을 남발,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국제 무역분쟁이라는 장벽을 만나게 된다.

 80년대초 3저 현상이 국내 부품산업이 대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해줬다면 80년대 후반 자유화 바람을 타고 일기 시작한 노사분규는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누벼온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악영향을 끼쳤다.

 임금인상에 따른 가격경쟁력 상실에다 일본·미국 등 선진국의 통상압력·기술이전회피 등 이중고에 직면한 국내 전자부품산업계는 이때부터 중국·동남아로 생산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생산공장의 해외 엑소더스는 결국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게 했으며 최근들어서는 ‘한류 열풍’을 타고 중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기업이 줄을 잇는 제2차

중국 진출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전자부품업계에는 생산라인의 자동화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고임금 구조에서 살아남는 길은 자동화뿐이라는 게 당시 전자부품업계의 한결같은 판단이었다. 이같은 자동화바람은 당시까지 납땜식에 의존해온 전자부품 흐름을 SMT화·칩화·모듈화로 돌려놓게 된다.

 자동화와 해외진출로 나름대로 경쟁력을 회복한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90년대 후반 또한번 대변혁을 맞게 된다. 다름아닌 무선통신서비스 개방. 남북문제로 민간개방에 억제돼온 무선통신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전자부품업계는 지금까지 가전기기 중심의 사업구조를 통신·광 부품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고 뒤이어 불어닥친 전자제품의 디지털화는 전자부품의 디지털화로 이어졌다.

 지난 40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국내 전자산업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온 국내 전자부품산업은 21세기, 인터넷·디지털로 대변되는 대전환기를 맞아 또다시 기로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전통부품은 중국의 추월이 눈앞에 다가왔고 이제 막 개화한 디지털·무선통신부품은 선진국의 견제로 진입하기 어려운 진퇴양란에 빠진 것이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