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시스템 입찰결과에 따라 시스템통합(SI)업체는 울고 웃지만, 프로젝트만 발주돼도 웃는 곳이 있다. 대형 SI업체들이 제안서 제작을 위해 단골로 이용하는 인쇄소가 바로 그곳.
현행 입찰제도대로라면 공공부문의 웬만한 프로젝트는 제안서 분량이 수백페이지에 달하고 참여업체들은 한권도 아닌 수십권의 제안서를 발주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대형 국방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A사 한 관계자는 “완성된 제안서를 대전까지 옮기는 데 트럭이 동원됐다”고 말했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아무리 공을 들여 제안서를 작성해도 수주전에서 탈락하면 보상받을 길이 전혀 없다.
“건설업의 경우에도 대형공사 설계비 보상기준에 따라 1.5% 수준의 제안서 보상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정보시스템 입찰은 민간부문의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SI업계의 불만이다.
그렇다고 제안서 보상에 관한 법률적인 규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제21조는 ‘제안서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자에 대해 예산의 범위 안에서 제안서 작성비의 일부를 보상할 수 있다’고 분명히 명시해 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별도의 추가예산 확보문제와 내부인식 부족으로 기준 고시 및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답변만 계속하고 있다.
◇성의없는 제안서 검토=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만든 수백쪽 분량의 제안서도 단 몇십분의 설명으로 평가는 끝난다.
프로젝트 실무자들은 “제안서 설명회에서 심사위원들이 제안서를 제대로 펼쳐 보지도 않고 뒤적거리기만 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씩 화가 날 때도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건설이나 엔지니어링 부문이 많이 포함된 지능형교통시스템 프로젝트에서는 심사위원들이 며칠씩 합숙을 하며 추가적인 질문사항을 해당업체에 팩스로 보내고 이를 답변받는 과정이 있어 몸은 힘들지만 보람은 있다”는 게 이들의 고백이다.
◇이해 못할 입찰 관행=최근 입찰을 마감한 한 정부기관 G4C프로젝트에서 업체들에 주어진 제안서 작성기간은 고작 2주일.
“발주자의 요구사항을 이해하기 위해 4, 5장의 CD로 구성된 정보전략수립(ISP) 결과를 확인하는 데만도 꼬박 3, 4일이 걸리는데 2주만에 제안서를 작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결국, 이같은 상황은 “ISP사업을 수행한 업체에 특혜를 주자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까지 이어진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상당기간 준비해온 대기업들도 힘든 마당에 중소업체들로서는 아예 엄두도 못낼 형편이다.
SI 전문가들은 “건설분야에서는 설계와 시공 업체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돼 있고 동일한 업체가 설계와 감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지만 정보시스템 입찰에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지적한다.
◇효율적인 입찰 프로세스=국내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프로젝트 입찰을 준비하는 해외 SI업체의 전문가 대부분이 “실제로 사업을 수행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시스템 구축 내용은 사업자 선정이 아니라 실제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다시 수립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충고다.
따라서 “국가적인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발주자와 사업 수행업체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현행 정보시스템 입찰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