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미국 테러사태로 대미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정보기술(IT)경기가 당분간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증시붕괴·유가급등·달러화 약세 등도 큰 문제지만 지난 10년간 한국을 포함한 세계 IT산업의 성장을 견인해온 미국의 투자 및 소비가 이번 사태로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IT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상실됐다”며 “더 악화되려야 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든 IT경기의 저점현상이 더욱 선명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올들어 급감세를 보이고 있는 반도체·PC는 물론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통신장비·소프트웨어 등 우리나라의 IT수출이 이번 사태로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IT의 경우 자동차·조선 등 구경제 업종과는 달리 미국이 주도하는 업종인데다 세계경기에 민감한 특성을 갖고 있어 수출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예컨대 최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D램 반도체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상승할 수도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이번 미국 테러사태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구매물량 축소 등이 예상돼 상승반전이 힘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들도 “우리나라의 IT수출액 가운데 북미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로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데다 이번 사태가 단지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가뜩이나 얼어붙은 세계 IT수요를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실제 수출계약을 목전에 두거나 대미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IT기업의 경우 이번 사태로 불똥이 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게이트웨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PC를 수출하고 있는 S사는 이번 테러사태가 PC수출에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해외마케팅 담당자는 “이번 사태로 미국내 현지 PC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사태파악과 함께 수출대책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전체 수출물량의 8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또다른 S사의 관계자도 “내달까지 미국에 50만여대의 PC를 수출키로 계약을 마무리중인데 이번 사태로 계약성사에 차질이 없길 바란다”며 “이번 사태로 향후 미국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사태는 올들어 IT수출품목 중 유일하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단말기 등 통신장비업종에도 적잖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삼성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유선장비업종은 거의 내수시장이므로 이번 사태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러나 미국 수출물량이 많은 단말기 업종과 무선장비 업종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에 통신장비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H사의 관계자는 “미국과의 수출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 사태로 일정이 연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통신장비 업계도 대미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IT수출업종 중 대미 수출의존도가 가장 높은 소프트웨어업계도 이번 사태로 수출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올 상반기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들의 수출계약액 1억2400만달러 가운데 44%에 해당하는 5500만달러가 미국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기업용 솔루션을 중심으로 현지 수요감소가 예상돼 소프트웨어 수출 또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IT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벤처기업들도 이번 사태가 해외사업 실패로 이어져 자칫 도산의 위기에 내몰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있다.
미국 진출을 앞둔 한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의 사장은 “이번 사태로 수출계약이 3개월 정도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며 “무엇보다도 해외수출과 투자유치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이 큰 낭패를 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IT업계와 정부는 미증유의 미국 테러사태를 맞아 수출지역을 미국에서 중국·중남미·중동 등의 지역으로 다변화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IT경기가 회복되기 전에는 수출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당분간 비상체제를 유지할 예정이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