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와 B2B 정책 좌담회>

◆최근들어 IT를 기반으로 하는 신경제, 즉 e비즈니스에 대한 비판이 높게 일고 있다. IT와 e비즈니스가 타 산업의 생산성이나 효율성 증대, 물가상승 억제력에 미치는 영향이 기대보다 미미하다는 연구보고서도 나오고 있으며 장기호황의 주역으로 간주돼 왔던 미국 IT산업이 부진해 IT와 e비즈니스에 대한 기대는 환상이라고 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환경과 인식 변화는 B2B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실제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번 좌담회는 상황변화에 따라 e비즈니스에 대한 인식을 다시한번 정립하고 올바른 B2B 정책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20개 업종의 시범사업을 중심으로 논의해 본다. 편집자◆

<참석자>

 이석영:산업자원부 차관보

 박용찬:인터젠컨설팅그룹 대표

 이영식:한국전자거래협의회 전무

 유영민:LG전자 업무혁신팀 상무

 박상용:보스톤컨설팅그룹 수석팀장

 류병우:허브엠닷컴 대표

 사회:김경묵 본지 디지털경제부 부장

 

 ◇사회:경기위축때문인 것도 같습니다만 IT의 투자대비 효율성에 회의론이 일고 있습니다. 이는 곧 e비즈니스에 대한 회의론으로도 연결되는데, 과연 그런 것일까요.

 ◇박용찬:우선 e비즈니스로 인해 변해가는 환경에서 해당 주체들은 어떤 변신을 해야 하는가, 변화를 위해 어떤 IT기술을 활용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사업적 관점에서 새로운 유형,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전자는 경기위축과 무관하게 해당 기업과 주체의 조건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후자의 노력은 좀 침체되고 있다고 봅니다.

 ◇박상용:컨설팅을 하다 보면 기업들이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라 할지라도 각 기업의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합니다. 지금의 실패도 특정모델이 실패하는 것이지, e비즈니스 모두가 실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류영민:e비즈니스는 ‘프로세스 혁신(PI)’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제조업체라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기업과 거래를 하는데, 주문이 발생하는 순간 공급망관리(SCM)상에 있는 무수한 기업간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들과 주문부터 생산·공급까지 연결돼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결국 지금 거론되는 실패는 기업이 처한 상황과 다른 얘기입니다. 현실은 실행기간을 90일 단위로 잘게 잘라야 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출 수 있는 기업 내부 프로세스의 변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류병우:중소기업은 또다른 조건입니다. 인프라가 너무 취약합니다. 지난해말부터 금형업체 부품구매력을 모아보자 해서 VAN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중소기업 중 매출 몇백억 정도는 PC나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거래해야 하는 상대업체가 PC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고자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지방 공단의 경우, 아예 전용선조차 없는 현실입니다.

 ◇사회:e비즈니스의 필요성에 대해선 재론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B2B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한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할 것 같군요. 정책의 실패나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그 사업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이었고, 이를 얼마나 충족했는가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정책이 혼선을 빚었다는 비판도 일고 있는데.

 ◇이석영:시범사업이 시작되던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하면 열기가 식은 것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1차 시범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시범사업 추진이 기업소모성자재(MRO)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표준화도 업종간 수평적 확대는 더딘 것 같습니다. 또 중소기업들로 갈수록 사내 정보화가 취약해 시범사업 결과물을 활용하는 데 애로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성패를 가르는 것은 이른 것 같습니다. 또 현재 추진하고 있는 업종별 B2B 시범사업은 분류체계 표준화와 같은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고 e마켓 구축 등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민간에 맡긴다는 원칙은 변함없습니다.

 ◇박용찬:B2B와 e마켓이라는 특정 비즈니스 모델을 동일시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B2B에서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90% 이상은 기업이 연계해 SCM 차원과 조직의 프로세스를 변화시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류병우:같은 생각입니다. 제조업체는 매달 소비되는 제품이 일정해도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증폭물량때문에 원래 생산규모보다 많은 생산규모를 갖춰야 합니다. 월마트의 경우 이런 폐단을 없애는 방법으로 창고에서 해당제품의 재고수준을 모니터할 수 있도록 해 제조업체의 생산부담을 줄이게 했습니다. 결국 산업내 가치사슬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죠. B2B나 EC, 혹은 기업의 e비즈니스는 단순 ‘바이 앤 셀’ 모델이 아닌 가치사슬의 통합(인티그레이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영식: e비즈니스는 기업내부의 CALS를 바탕으로 기획·생산해서 동시공학적으로 이뤄지고 외부로 연결될 때 EC가 구현됩니다. 기업의 요소가 100% 채워지지 않았고, 또 금융간 거래 등 외부요인들도 조건이 다 채워지지 않았는데 완벽한 그림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석영:9개 전략업종은 톱다운(top-down)방식으로 추진됐습니다. 몇몇 업종에서 제기된 문제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때문에 2차사업에서는 버텀업(bottom-up)방식을 취하게 됐습니다.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죠.

 ◇박용찬:정부 정책 시작은 적절했다고 봅니다. 다만 상황변화가 심했고 업종별 다른 모델로 가져나갈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한 궤도관리 측면의 문제가 아쉽습니다. 지난 6월까지 진행상황을 평가한 결과 자문위원회의 공통된 평가는 모델의 다양성이 발견됐고 변화관리도 진일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특정 비즈니스 모델보다 인프라영역을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일부 잘못된 시행착오는 계속 보전될 것으로 봅니다.

 ◇박상용:미국 슈퍼하이웨이도 알고 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부의 정책은 발빠르게 진행돼 높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시범사업에서 불거진 기업의 협업문제 또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게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봅니다. 글로벌 자동차 B2B 업체인 코비신트만 해도 CEO 선임이 9개월까지 흘렀습니다. 일부 민간기업에는 경기가 위축되고 B2B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는 요즘 정부의 지원이 좀더 두드러질 것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이영식:시범사업을 단 1∼2년내에 평가할 수 없다고 봅니다. 또 기업의 협업문화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IT 전문업체보다는 민간업체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사용자가 될 그들이 참여해야 사업은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11개 업종의 시범사업도 본격 시작됐습니다. 2차 시범사업의 지향점은 어떻게 세워져 있는지요. 특히 정부의 역할과 민간사업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분명히 하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이석영:1차업종의 경우 산업파급력이 낮은 MRO 중심이었습니다. 2차업종은 핵심부품분야로 범위를 넓히고 오프라인 참여기업도 독려했습니다. 논란이 일던 e마켓도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했습니다.

 ◇박상용:민간기업이 적극 나서야 할텐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 정부는 표준화를 적극 지원하되 참여업체에 인센티브를 주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현실적으로 대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과 SCM으로 이뤄진 하청업체만이라도 온라인화한다면 절반은 이뤄진 것으로 봅니다. 또 협회는 기업의 가려운 곳을 찾아 성공사례를 발굴, 많은 기업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박용찬:1차 시범사업에서 제기됐던 문제도 사실은 대기업 참여와 네트워킹에서 발생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대기업들은 공통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역할분담하는 것, 즉 경제성있는 모델을 찾자는 것이죠. 대기업의 거부반응은 그간의 독자노력이 있는데, 시범사업으로 이것이 무시되는 것처럼 오해되는 데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분명 기업 자체로 직접 할 수밖에 없는 범위가 있다고 봅니다.

 ◇유영민:사실 무수한 SCM상 협력업체를 갖고 있는 대기업은 사설 e마켓의 비중이 크고 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일렉트로피아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도 그때문이었죠.

 ◇류병우:1차사업을 시작한 금형은 이미 시작한 9대 업종 중 전자나 자동차 업종의 고객이 됩니다. 또 함께 시작한 공구나 1차사업의 철강업종은 금형업종의 기업이 구매자가 됩니다. 시범사업이 전개되면서 밸류체인상 연결돼 있는 업종을 찾을 수 있도록 산자부나 협회가 제시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상용: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증기기관이 전체 산업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e비즈니스가 몰고 올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e비즈니스는 오랫동안 감춰져 왔던 비효율적인 요소를 한꺼번에 고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입니다.

 <정리=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