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 한판 하자.’
퇴근시간을 넘긴 오후 8시 A회사 사무실. 30대 초반의 직원 대여섯명이 약속이나 한듯 컴퓨터 앞으로 몰려든다. 오늘도 PC게임 ‘스타크래프트’ 지존을 가리기 위해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PC게임 ‘스타크래프트’는 ‘스타크’로 통한다. 학생들이나 젊은 직장인들은 쉬는 시간에 ‘스타크’ 얘기를 하다 일과후 PC방으로 직행하곤 한다.
‘스타크래프트’는 지난 98년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그리고 3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 인기는 좀체 가시지 않고 있다.
테란, 프로토스, 저그 등 미래의 3개 종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게임은 빠르고 화끈한 전투가 백미다. PC게임이지만 네트워크 대전을 통해 인간 대 인간의 대결이 가능해 국내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언제 스타크 한판 하자’는 것이 인사가 됐을 정도.
가요계의 ‘서태지 신드롬’이 랩 열풍을 만들어냈다면 ‘스타크 신드롬’은 PC게임 열풍을 만들어냈다.
학생들은 물론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스타크’를 모르면 ‘왕따’기 되기 십상이다. 요즘에는 ‘디아블로2’ ‘창세기전’ 등 롤플레잉 게임을 비롯, 스포츠·액션·아케이드 등 장르마다 ‘골수팬’이 생기고 있다.
청소년들은 롤플레잉 게임 ‘디아블로2’를 한번 잡으면 뜬눈으로 밤을 새기가 일쑤다. 직장인들은 액션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로 즐기는 ‘사이버 총싸움’을 위해 점심식사를 먹는둥 마는둥 한다. 어린이들도 아동용 게임 ‘하얀마음백구’를 하느라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산다.
특정 게임 마니아들의 모임도 수백개에 달한다.
청소년부터 40대 중년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PC게임 때문에 놀이문화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회사 회식은 빠져도 게임동호회 모임은 절대 거르지 않는가 하면 술자리 대신 게임대결로 친목을 도모하는 젊은 직장인들도 속속 생기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일과후 당구장이나 볼링장을 찾던 사람들이 이젠 PC방으로 몰린다.
이같은 게임열풍에 힘입어 PC게임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2’ 등 게임에도 ‘밀리언셀러’가 속속 탄생하는가 하면 ‘대박’의 꿈을 좇는 PC게임업체도 1000개가 넘는다.
이에 따라 PC게임 시장은 매년 2배 이상 커지고 있으며 올해 사상 처음으로 2000억원대에 육박할 전망이다. 2∼3년 전만 해도 몇백억원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PC게임으로 촉발된 게임붐은 게임에 대한 인식마저 바꿔놓고 있다.
장래희망이 게임개발자 및 프로그래머인 청소년들이 부쩍 늘었고 대학내 게임관련 학과도 잇따라 개설되고 있다. 최근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프로게이머’가 가장 하고 싶은 직업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PC게임이 각광받게 된 원인 및 배경을 다양하게 분석해 내놓고 있다.
이들은 우선 PC게임열풍은 게임 플랫폼인 PC가 대중적으로 보급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PC게임에 이어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먼저 인터넷이나 휴대폰과 같은 인프라가 잘 깔렸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 ‘스타크래프트’처럼 인공지능이 월등히 향상된 게임 소프트웨어가 속속 등장, 게임 저변을 마니아층뿐 아니라 일반인으로 확산시켰다고 분석한다.
특히 인공지능이 강화되고 네트워크 플레이가 가능해지는 등 PC게임내 ‘인터액티비티(상호작용성)’ 기능이 향상되면서 PC게임은 최고의 오락수단으로 각광받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게임 컨설팅업체인 게임브릿지의 유형오 사장은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사이버 스페이스 속에서 내가 움직인다’는 인터액티비티에 있다”며 “최근 인터액티비티 기능이 대폭 보강된 PC게임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PC게임이 새로운 놀이문화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PC게임의 미래가 무조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최근들어 온라인·모바일·비디오콘솔 등 다양한 게임 플랫폼이 개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게임은 인터액티비티에서, 비디온콘솔 게임은 인공지능에서 대체로 PC게임을 능가한다고 평가한다. 때문에 PC게임 유저층 가운데 상당수는 앞으로 온라인이나 비디오 게임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PC가 가장 대중적인 게임 플랫폼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한 PC게임의 인기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