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한적한 시골 양구군의 한 인터넷PC방.
매일 오후 4시면 이곳 PC방이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해진다. 주변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자마자 가방을 메고 이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이들 어린 학생은 ‘스타크래프트’ ‘피파2001’ 등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에 몰두하며 기쁨과 안타까움의 괴성을 지른다. 또 다른 일부는 너무나 진지하게 무언가를 경청하고 있다. 바로 동네에서 꽤나 잘나간다는 스타크래프트의 고수로부터 전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것.
이러한 현상은 강원도뿐만이 아닌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생하고 있다. 전국이 e스포츠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국내 e스포츠의 시작은 PC방이 생기고 스타크래프트가 확산되던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의 작은 PC방에서 단골 손님의 확보와 매출 증대를 위해 단발적으로 마련했던 게임대회가 국내 e스포츠의 태생이다. 이후 PC방이라는 네트워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전국 규모의 게임대회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이때가 98년 하반기다.
99년부터는 게임대회가 e스포츠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면서 본격화됐다. 한국프로게임리그(KPGL)·배틀탑·넷크럽·고수·프로게이머코리아오픈(PKO) 등 게임대회와 리그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 상반기 국내 e스포츠는 배틀탑의 한국인터넷게임리그(KIGL)·PKO·한국게임리그(KGL) 등 3대 프로게임리그로 정착됐다. 이때부터 대기업들이 게임대회 홍보에 적극 나섰으며 이벤트도 다양해졌다. 상금도 크게 늘어, 지난해 게임대회 상금 총액은 무려 30억원에 이를 정도다.
올들어 게임대회는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특히 기존 PC방에서만 진행되던 게임대회는 다양한 장소에서 펼쳐지고 있다. 올 여름에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킹덤언더파이어 챔피언십’이 열렸으며, 진도에서는 ‘하얀마음백구 게임대회’가 개최됐다. 또 여수 오동도에서는 ‘청소년 포트리스2 블루’ 게임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e스포츠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프로게이머다. 스타크래프트 개발사인 블리자드의 세계 게임대회에서 우리나라 청오 SG팀의 신중영이 우승하며 프로게이머라는 명칭이 일반 대중에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등장한 이기석은 전국 규모의 게임대회를 연이어 제패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특히 그는 ‘쌈장’이라는 아이디로 방송광고에 출연해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됐다. 이후 프로게이머는 청소년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인기직종으로 급부상했다. 10∼2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직종을 조사하면 1, 2위는 기본으로 ‘프로게이머’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올 초 프로게이머 등록제가 시행되자마자 92명이 등록하는 등 프로게이머는 큰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활동중인 프로게이머는 이미 300명을 넘어선 상태. 이들 프로게이머의 연봉은 성적과 지명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2000만∼3000만원 정도다. 하지만 이벤트 초청, 광고, 서적 및 비디오 출간 등을 합하면 1억원을 넘는 억대 선수들도 다수 있다.
프로게이머의 등장과 함께 프로게임단도 많이 등장했다. 지난해는 최대 35개까지 생겼다. 초창기 게임단은 게임리그 프로모션에 의한 게임단과 대기업에 의해 창단된 게임단 등 두가지 유형이 있었다. 현재는 소수 게임단들이 통폐합되고 대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7개만 남아있다.
e스포츠가 생활 스포츠로 정착되면서 종목수도 크게 늘어났다. 최초 스타크래프트에만 의존했던 게임대회가 차츰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는 12월 열리는 월드사이버게임즈(WCG)의 종목만도 스타크래프트·피파2001·에이지오브엠파이어·퀘이크3·카운터스트라이크·언리얼토너먼트 등 6개에 이른다. 또 강진축구·쥬라기원시전2·레인보우식스·포트리스2 등이 시범종목으로 채택돼 치러진다.
이들 종목 외에도 국내에서는 아트록스·하얀마음 백구 등 다양한 종목의 게임대회가 펼쳐지고 있다. 심지어 마작·오목·바둑 등도 e스포츠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최근에는 게임이 개발되면 으레 게임대회를 통해 홍보와 마케팅을 거치는 것이 관행화되는 실정이다.
e스포츠의 붐과 함께 게임전문 방송국도 등장했다. 케이블방송으로는 온게임넷과 겜비씨, 인터넷방송으로는 게임Q와 저그방송 등이 꼽힌다. 이들 전문방송국은 매주 게임대회 중계를 비롯해 게임전략 및 프로게이머 소개 등으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채우고 있다. 또 지상파인 경인방송과 서울방송(SBS) 등은 게임관련 고정물을 편성해 방송하고 있으며 케이블방송인 E채널은 게임관련 콘텐츠를 다수 제공하고 있다.
e스포츠가 활기를 띠면서 주변산업도 함께 호황을 맞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자체 매출이 450억원을 나타낸 반면, PC방 매출 1조원을 포함해 광고(90억원), 출판(50억원), 캐릭터(5억원) 등 주변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e스포츠의 열풍은 분명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최근에는 10∼20대뿐만 아니라 40대, 50대까지 e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정부도 이를 반영해 오는 12월에는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세계 e스포츠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WCG를 개최한다. 국내에서 최초로 열리는 WCG는 우리나라의 e스포츠 열풍을 전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