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fifty minutes)’. 최근 관록의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영화제목이 아니다. 기자의 실수로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지 불과 15분. S사의 그룹웨어 게시판에는 ‘S사 제품, 구형모델, 음량조절키가 빠진 파란색 휴대폰 분실하신 분’이라는 분실물 신고가 15분만에 떴다. 노트북과 함께 필수품 가운데 하나인 휴대폰을 찾은 기자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룹웨어의 힘을 실감했다.
디지털콘텐츠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가정과 기업, 정부라는 공간을 바꾸고 실시간이라는 무서운 속도로 시간을 제어하며 커뮤니티내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변화시킨다.
생존법칙이 엄존하는 기업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기업들이 의욕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전사적자원관리(ERP)나 고객관계관리(CRM)의 구축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기업들은 이를 ‘제때 제대로’ 채택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산다. 그래서 기업들은 수백억원의 돈을 들여 디지털콘텐츠를 구축하고 있다.
◇지식공유문화=기업 업무환경을 바꾸는 요소들은 많이 있다. 그중에서 요즘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지식관리시스템(KMS)이다. 사람들은 이를 기업의 환경을 바꿔주는 디지털콘텐츠의 엔진이자 바퀴라고 한다.
KMS는 기업의 지식공유 문화를 만들어가는 수단이다. 삼성SDS의 예를 보자.
이 회사에선 해당부서와 직책 대신에 따로 불리는 호칭이 있다. 이른바 지식마스터. 그룹웨어를 통해 사이버상에 올라온 업무·비업무상의 애로사항에 귀기울이고 가능하면 문제해결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식마스터가 활동하는 문제해결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제안서 작성과 같은 기본 업무의 팁에서부터 업무현장의 문제점, 생활지식, 취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영역을 자랑한다. 이런 지식마스터의 존재를 아는 직원들은 이제 곤란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지식마스터를 찾는다. 거기에 가면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SDS는 지난 96년 지식경영을 사내에 도입하면서 지식마스터를 단계적으로 양성했다. 회사는 시장의 변화나 임직원들의 요구사항을 지식경영시스템에 반영하고 임직원은 이를 활용해 지식을 축적하는 식이었다. 이제 450여명으로 늘어난 지식마스터는 삼성SDS의 지식을 커뮤니티로 확산시키는 전령이 되고 있다.
LGEDS도 사내 KMS를 통해 업무 문화를 크게 변화시켰다. 임직원들은 디지털화한 지식에 자유로이 접근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했다.
저장성·신속성·개방성을 가진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토론문화를 촉진했고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는 임직원을 업무적 번거로움에서 해방시켰다. 이 회사의 임직원들은 KMS를 ‘지식의 저장소’라고 부른다.
대우정보시스템도 ‘네오드림(Neo-Dream)’이라는 지식관리시스템을 통해 지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전자결재는 물론 기술정보도 이를 통해 공유한다. 이 가운데서도 임직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은 ‘광장’이라는 코너다. 유머·추천·경조사·뉴스클리핑 등 업무 외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약방의 감초다. 제자리에 앉아서 갑자기 키득키득 웃는 사람을 보면 광장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생각하는 글’ 코너도 직원들의 발길로 붐빈다. 이 코너에 가면 사내외 이슈를 바로 알 수 있다. 임직원들은 소위 ‘계급장을 떼고서’ 토론의 자유를 만끽한다.
◇재교육=직원 재교육의 형태를 바꾸는 디지털콘텐츠도 있다. 삼성SDS는 소위 ‘현장교육기동팀’을 가동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정보기술(IT) 출장 교육팀이다. 기동팀은 전국에 산재한 임직원에게 직접 찾아가 해당 직무교육을 실시한다. 과거에 연수원에 들어가 집단적인 숙박교육을 받던 것을 필요에 따라 변형한 것이다.
월례조회 등의 장소로 쓰이던 강당도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 월례조회를 실시하면서 LGEDS시스템은 집합형 월례조회를 인터넷으로 대치했다.
임직원들은 굳이 강당에 모일 필요없이 제자리에서 월례조회에 참석한다. 얼굴을 맞대는 정서가 줄긴 했지만 임직원들의 호응만큼은 대단하다. 이 때문에 LGEDS시스템은 새로 이전한 본사에는 아예 강당을 만들지 않았다.
디지털콘텐츠는 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료의 재생과 취득을 쉽게 했다. 지난 5월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한 SKC&C는 주문형비디오(VOD) 방식을 채택, 임직원들이 언제라도 자료의 시청을 가능하게 했다.
SKC&C는 인터넷 방송국이 사업 모델로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신규사업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지식경영의 성과가 여러모로 미지수다. 계량화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이론이 분분하며 심지어 지식경영의 성과제시를 지식경영의 실패요인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디지털콘텐츠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초월적 위력을 가졌다. 초월적인 위력은 삽시간에 기업문화를 흔들고 있다. 디지털콘텐츠의 가치가 정당하게 계량화될 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