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개봉된 우리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는 엇갈린 인연으로 인해 헤어져야만 했던 두 연인이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다.
80년대 두 주인공이 데이트를 즐기는 장소는 허름한 음악다방. 남자주인공은 DJ 박스에 노래를 신청하고 여주인공은 그 노래에 감동한다.
반면 최근 최단기간내 관객 400만명이라는 엽기적 기록을 수립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요즘 세대의 발랄함이 묻어나는 또다른 사랑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남자주인공 견우와 ‘그녀’는 이동전화 덕분에 헤어졌어도 다시 만나고 신세대답게 나이트 클럽에 가서 마음껏 스트레스를 해소할 줄도 안다. 사실 영화에서 이들은 특별히 n세대 티를 내는 놀이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번지 점프를 하다’의 연인과는 뭔가 다른게 있다. 두 영화의 연인들은 온몸으로 세대 차이를 드러내고 있으며 확실히 다르게 논다.
굳이 영화의 예를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n세대의 엔터테인먼트 풍속도를 엿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단편적으로 휴대폰으로 이동중에 게임을 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거나 3D애니메이션이 자주 화제가 되는 것만 보더라도 이제 디지털로 즐기는 문화는 n세대의 평범한 일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요일 오후, 젊은 인파로 북적대는 대학로 한 켠의 DVD방. ‘디지털 영화관’이라는 명칭부터가 이색적인 이 곳에는 DVD로 실감나는 영화감상을 하기 위해 몰려든 젊은 연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예약을 못하면 30분쯤 기다려야 하지만 둘만의 공간에서 웅장한 사운드와 화면을 감상하는 재미에 매번 이 곳을 찾게 됩니다.” 주말마다 멀리 홍대에서 이 곳까지 원정을 온다는 김재민군(23)은 지척에 극장을 두고 DVD방을 찾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필름이 아닌 디지털비디오디스크로 구현되는 또다른 세계에 매료된 DVD 마니아 덕분에 최근 DVD방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온라인 상영관을 찾는 이들도 많다. 화면이 작다는 단점이 있지만 디지털 영화는 그만의 독특한 장점이 있다.
시네포엠·iCBN·키네 등 대다수 인터넷 영화관들은 별도의 디지털 영화 상영관을 통해 그들이 직접 제작한 단편 디지털 영화를 선보인다. 특히 지난해말 온라인 극장에 내걸린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는 이를 패러디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 단편 영화를 단번에 세인의 관심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디지털 영화에 대한 관심은 직접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어린 n세대 감독도 속속 탄생시키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영화제작에 나선 중고등학생들은 이미 중고딩 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영화제작에 부는 디지털 바람은 기존 셀애니메이션 만화영화의 아성을 3D애니메이션이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얼마전 개봉한 드림웍스의 야심작 ‘슈렉’은 스토리에서부터 저변에 깔린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디즈니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는 점에서 유쾌하다. 특히 3D애니메이션의 정교함은 놀랍다. 실제 인간을 창조하듯이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근육과 피부를 덮은 결과 만화 속의 캐릭터는 실제 배우처럼 살아있다.
혹자는 3D애니메이션이 아무리 진화한다고 하더라도 셀애니메이션의 전통적인 질감이 없어 재미가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새로우면서도 세련된 무언가를 바라는 n세대에게 3D애니메이션은 점점 각광받는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영화와 함께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확산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게임이다.
스타크래프트의 경이적인 성공 위에 온라인 게임·모바일 게임으로 이어지는 게임 열풍은 게임산업의 발전은 물론 n세대의 생활패턴 자체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대부분의 n세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PC방을 찾는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덕분에 급격히 늘어난 PC방은 그 자체로 새로운 문화공간이다. 지나치게 게임에 중독돼 PC방을 떠날줄 모르는 이들도 있지만 마치 스포츠를 즐기듯 가뿐하게 게임 한판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 고급화된 PC방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 것도 이같은 추세를 반영한다.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말그대로 게임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쾌적한 환경과 그들만의 기호에 맞춘 서비스가 필요하다.
영화표를 끊어놓고 시간이 남는 n세대 연인이 PC방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다. 멀티플렉스가 밀집해 있는 종로나 강남 부근의 PC방에는 특히 이같은 PC방 데이트족이 많다.
포트리스를 즐기는 여성이나 남녀 커플끼리 스타크래프트 대전을 벌이는 장면도 흔하다.
남자친구 덕분에 PC방에 오는 재미를 알았다는 대학생 김모양은 “그동안 시간이 남으면 카페에 가곤 했는데 이제는 보다 저렴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찾은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
이렇다보니 기존에 복합 놀이공간을 갖추고 있는 메가박스나 강변역 CGV 외에도 최근 등장하는 극장들은 아예 PC방이나 체험게임관 등을 필수로 마련한다.
복합 놀이공간의 PC방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게임만이 아니다. 무료 PC사용이 가능한 곳에서 e메일을 체크하고 채팅으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즉석에서 음악CD를 만들어내는 일도 가능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에게 좋은 노래만을 골라 녹음해 선물하려면 레코드숍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음악 편집자가 돼 마음에 드는 취향의 음악을 골라내고 MP3플레이어에 담아 들을 수 있다. 최근 음악사이트인 소리바다의 합법성 문제로 음악파일 공유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디지털 음악파일을 주고받는 네티즌의 행위가 향후 보다 확산될 것은 분명하다.
레코드 가게마다 음악 테이프 대신 콤팩트 디스크가 빼곡히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처럼 내 PC 속에도 나만의 레코드숍을 차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더욱이 DVD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디지털영화 제작에 직접 나서고 PC방에서 온라인 게임 서버에 접속하는 n세대에게 디지털로 다시 태어난 음악을 내 맘대로 골라 듣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기 때문이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