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PC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장애인정보화협회 최성중 회장.
지난 95년부터 이 운동을 시작, 지금까지 1만대의 PC를 장애인들에게 나눠줬다.
그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장애인정보화협회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후원자 및 업체들로부터 중고PC를 기증받아 이를 장애인들에게 보급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또 장애인들이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무료교육도 실시한다.
최 회장은 중고PC 기증자를 찾아다니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컴퓨터를 지급받고 좋아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자신도 지체장애자이기에 장애인들이 누구보다도 컴퓨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컴퓨터야말로 바깥 출입을 못하는 중증장애인에게는 바깥 세상으로 나들이하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최근 컴퓨터는 어느 집에나 있는 물건으로 변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아직도 컴퓨터가 사치품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경우 인터넷 이용인구는 전체장애인의 약 6.9%, 컴퓨터 보유율은 11.0%, 정보화교육경험은 15.5%(비장애인은 38.4%)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인구가 전인구의 약 44%이고 이중 가구당 컴퓨터 보유율이 71%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때문에 장애인들은 협회에서 PC를 보내주면 비록 중고PC지만 맛있는 과자를 선물받은 어린 아이처럼 좋아한다고 한다. 최 회장은 이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장애인PC보급에 힘써왔다.
그동안 전국의 장애인들에게 1만대의 PC를 보급, 어느 정도 할일은 했지만 최 회장은 그래도 아쉬움이 많다. 이러한 아쉬움은 아직도 컴퓨터가 없는 장애자가 많은 이유도 있지만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컴퓨터 보조장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일반인용 키보드와 마우스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컴퓨터 기기는 정상인 위주로 제작된 것이어서 신경학적 손상, 척추 손상, 근골격 손상, 심폐 손상 등의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여러가지 장애유형에 맞게 개발된 장애인 PC이용 보조기구들이 판매되고 있다.
최 회장은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이러한 PC와 보조장비들을 함께 보냈으면 하지만 보조장비는 구하기도 힘들고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내고 있다. 예를 들면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입으로 키보드를 터치할 수 있도록 하는 평범한 스틱조차도 3만원이다. 제일 싼 것이 이 정도고 특수 장애인을 위한 마우스·스위치·키보드 등의 가격은 30만∼40만원을 쉽게 넘어선다.
장애인들의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을 위해서는 정보통신기기의 보급도 중요하지만 전자문서나 웹사이트 등과 같은 정보내용물의 접근성도 보장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의 이용불편을 해소한 컴퓨터 및 전자문서나 웹사이트를 읽어주는 음성낭독기의 보급이 필요하며 지체장애인의 문서 입출력을 지원하는 다양한 입출력도구의 개발 및 보급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장애인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08만원 정도로 233만원 가량인 도시 근로자 평균 소득에 46.4%에 불과하다. 이처럼 장애인들이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정보화 보조기기 구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장애인단체들은 정보화 보조기기를 재활보조기구로 인정, 정부에서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에는 장애인을 위한 정보통신기기 보급 지원과 관련된 조항도 있다. 법 57조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신청이 있을 때에는 예산의 범위 내에서 재활보조기구를 교부·대여 또는 수리하거나 재활보조기구의 구입 또는 수리에 필용한 비용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활보조기구는 장애인이 장애의 예방과 보완 및 기능의 향상을 위해 사용하는 의지(義肢)·보조기 기타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보장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편의증진을 위해 사용하는 생활용품까지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의 정보이용을 위한 정보통신기기도 재활보조기구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급된 재활보조기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TV자막수신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손목시계, 지체 및 뇌병변장애인의 발목 교정용 정형외과용 구두에 한정돼 있다. 따라서 정보통신기기가 재활보조기구에 포함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의 정보이용을 위한 음성낭독기, 지체장애인을 위한 헤드마우스, 간편 키보드 등 다양한 입출력기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활보조기구를 규정하는 법 제 55조를 개정해 재활보조기구에 보장구와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정보이용을 위해 필요한 도구’를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또 국내에는 이러한 보조장치를 개발, 생산하는 업체가 전무하다는 점도 장애인정보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보조장비들은 모두 해외에서 수입된 제품들이며 때문에 가격이 높은 편이다.
만약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보조장비를 개발, 보급한다면 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장애인정보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업체들이 뛰어들 만큼 시장이 크지 못하다는 것이다. 시장이 좁다보니 채산성이 떨어지고 당연히 업체들도 시장참여를 회피하게 된다. 결국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면 개발생산업체도 등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양한 장애 특성상 장애인들의 정보접근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이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기기들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에서 장애인의 정보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컴퓨터 이용보조장비의 보급은 시급한 일이며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또 이러한 장비들을 개발할 때는 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고려하여 신체적·환경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요소를 감안한 국·내외 실태분석, 사용자 요구분석, 설문 등 기초적인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이제 정부에서도 1가구 1PC 보급을 장려하고 초고속통신망 구축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등 전국민 정보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몸이 불편한 상당수의 장애인들도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보 및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정보화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다. 장애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보조장비를 보급하는 일은 그같은 노력의 하나에 불과하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