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IT시대를 준비한다>`5T 세상`이 활짝 열린다

 “IT의 전성기는 지났다.”

 “아니다. IT는 다만 미래를 향해 진화할 뿐이다.”

 정보기술(IT)의 깊이가 어느 정도 ‘태생적’ 한계에 이르고 지난 십수년 동안 지구촌 경제를 이끌었던 IT 경기가 총체적 침체국면을 맞으면서 IT를 이을 다음 주자, 즉 ‘포스트 IT’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각에선 현재 절정을 구가하고 있는 IT가 퇴조할 것이며 그 사이를 생명기술(BT), 나노공학(NT), 환경공학(ET), 문화공학(CT) 등 뉴하이테크가 비집고 들어와 IT와 함께 머지않아 ‘5T 시대’가 열린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인류 생활의 주무대가 변천해왔듯, IT를 이을 또 다른 무대가 우리 앞으로 다가 오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전화에서 TV, 컴퓨터, 이동전화 등을 거쳐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IT는 초고속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20세기 말부터 분명히 기술 발전속도가 더뎌졌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10여년 동안 세계 최고의 하이테크 전시회로서 그동안 IT분야 신기술 데뷔무대이자 세계 IT산업의 진열장으로 간주돼왔던 미국 ‘컴덱스 쇼’에서도 이제 더이상 새로운 것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연히 컴덱스 쇼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점점 멀어지는 듯한 양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IT의 발전이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 지금 이순간에도 IT기술은 새로운 분야로 접목을 시도하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IT는 다만 지금 엄청난 변화의 길목에 서 있을 뿐이다.

 이 변화의 핵심이 바로 ‘확산(spreading)’과 ‘심화(deepening)’라는 두가지 화두이다. IT가 이제까지 여러가지 기술적 물리적 한계 때문에 대량 보급에 초점이 맞춰져 발전해왔다면 포스트 IT시대에는 그 효율적 활용에 촛점이 맞춰져 발전해간다는 것이 ‘확산’과 ‘심화’의 논리이다. 여기서 효율적 활용의 대상이 바로 BT·NT·ET·CT 등 뉴하이테크 분야다. 그러니까 앞으로 다가올 IT의 새로운 혁명은 IT의 단순 확산에 의해서가 4T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나게끔 돼 있는 것이다.

 세계는 그동안 IT 관련 제품의 보급을 통해 산업사회를 정보화 사회로 송두리째 바꾸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단행했다. 그런만큼 포스트IT를 위한 하부구조(인프라 스트럭처)는 매우 튼실하다. 엄청난 양의 컴퓨터와 휴대형 정보단말기가 보급됐으며 거미줄같은 통신망이 지구를 뒤덮고 있다. 더욱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IT의 보급 속도는 더욱 빨라졌으며 시공을 초월해 모든 정보 및 콘텐츠의 공유가 가능해지고 있다.

 이같은 하부구조 위에서 IT는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확산’과 ‘심화’의 과정을 수반하며 다시한번 전성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IT의 꽃’ ‘IT의 총아’라 불리는 인터넷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향후 5년 이내에는 지구촌 모든기계와 사람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명실상부한 지구촌 네트워크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광통신과 위성통신 기술의 발달은 네트워크의 한계를 극복, 산간 벽지·사막·섬 등 오지까지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 한 차원 높은 ‘월드와이드웹’을 형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통해 세계는 초고속으로 멀티미디어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주고받을 수 있는 길로 치닫고 있다.

 그런가하면 새로운 인터넷 주소체계인 ‘IPv6’의 출현으로 모든 정보기기는 물론 독립형 전기·전자제품, 자동차, 기계장비에 이르기까지 마치 현재 인터넷에 연결된 PC처럼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기존에 보급된 초고속망과 슈퍼컴퓨터 등 하드웨어 인프라와 고급 인력 등 소프트웨어 인프라 활용을 극대화하여 기초과학과 기간산업의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기 위한 이른바 ‘그리드(GRID) 프로젝트’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지리적으로 분산된 고성능 컴퓨터와 대용량 DB를 병렬로 연결해 마치 수백대의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발휘하는 그리드 프로젝트는 ‘IT의 심화’라는 새로운 화두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며 IT업계의 새 화두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그리드 네트워크’를 통해 인류가 꿈으로만 생각했던 인간 게놈분석을 비롯해 △항공기 구조 통합 설계 △지진 예측 및 분석 △우주 생명체 탐색사업 ◇핵 물리학 등 미래의 도전 과제를 하나하나 수행 중이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e유럽’ 구현이라는 모토 아래 물리·화학·생물학·의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 그리드를 활용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일본도 지난해부터 원자력 및 고에너지 물리학을 중심으로 이를 추진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국가 그리드 기본계획’을 수립, 그리드 대열에 동참했다.

 이같은 새로운 네트워크의 출현으로 IT는 앞으로 BT와 ET 등 다른 분야와 활발하게 접목되며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즉, BT·ET 등 새로운 기술에 바통을 넘겨주고 뒷켠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들과 더욱 활발히 융화하며 진화해 간다는 것이다.

 ‘포스트IT시대’가 오면 시대의 3주역인 정부, 기업, 시민(네티즌) 입장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부는 정보인프라의 대대적인 확산과 이의 활용 극대화로 인해 명실상부한 ‘전자정부’를 구현, 모든 정책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정보화의 진전으로 모든 유무형 자원원의 효율화가 가능, ‘작은정부’ 구현도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서는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개발-생산-물류-판매-사후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e비지니스’가 현실화됨으로써 엄청난 기회의 땅이 열릴 것이다. 특히 기업의 ‘정보화 마인드’와 ‘디지털 자본’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로 등장, 기업의 판도가 지금과는 사뭇 판이하게 전개될 것이 자명하다.

 시민들에게도 삶의 질 향상 등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정의 모든 전기·전자·정보기기가 네트워크로 연결, 어디서든 통제 가능한 홈네트워크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다. 그런가하면 종, 횡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아래서 모든 사람들의 생활패턴부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포스트 IT 시대’는 세계의 헤게모니를 다시한번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란 사실이다. 수십년 동안 세계의 주도권 다툼의 최대 변수로 작용했던 정보기술이 더욱 확산 및 심화될수록 급변하는 IT에 대한 대응 결과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 포스트IT에 대비한 준비를 이제부터라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 대로라면 적어도 10년후 지구촌의 모습은 지금 예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고도화됨은 물론 과거 100년간에 걸쳐 이뤄진 변화가 몇년안에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포스트IT 시대의 세계적인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범 국가차원의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