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IT비전>`요람에서 무덤까지` 디지털 세상

 IT는 지난 반세기 동안 기술과 산업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바로 디지털 혁명이다.

 디지털 혁명은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었다.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 산업고도화의 주역으로 모든 생산 활동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IT는 주지하다시피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새로운 신기술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 후 그칠 줄 모르고 지속된 혁신의 산물이다. 한때 유행하는 패러다임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인프라 기술이다. IT는 최근 관심이 높은 환경기술(ET)·나노기술(NT)·문화기술(CT)·생명기술(BT) 등 신산업을 더욱 강하게 무장시킬 수 있는 기반기술이다.

 IT와 이들 신기술이 이뤄내는 포스트IT 역시 IT의 또다른 진화 단계이자 발전된 모습인 셈이다. 이런 면에서 포스트IT 세상은 이미 시작됐으며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포스트IT가 시민·정부·기업 3대 축을 중심으로 그리는 미래 청사진은 공상과학의 이야기가 아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다.

 

 ◇시나리오1=디지털 정부

 2004년 서울의 한 사무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떼야 하는 김씨는 책상 위 컴퓨터를 조작한다.

 우선 ‘한국정부 단일전자민원창구’ 사이트에 접속, 인적사항과 비밀번호를 입력해 등본 발급신청을 한다. 그러면 관할 동사무소로 자동연결돼 잠시 후 등본이 그의 모니터에 도착한다. 김씨는 그것을 온라인으로 보내거나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다.

 포스트IT 세상이 그리는 첫번째 작품은 역시 ‘디지털 정부’라 불리는 전자정부다. 사실 전자 정부는 말은 무성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이 없다. 전문가들도 아직은 ‘정부 업무의 전산화’와 ‘온라인 세상의 독립된 통치기구’의 중간쯤에 전자정부를 자리매김시키는 정도다. 여기에 입법·사법기관을 포함해 권력 3부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형태로 전자정부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자정부는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에서 이뤄지는 수만가지 민원서비스를 디지털화해 국민에게 획기적인 편리함을 주게 된다. 전자정부는 정부의 생산성·투명성·민주성 제고라는 3대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통치기관이다.

 전자정부가 출현하면 달라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행정기관의 각종 민원을 전자문서로 신청·신고·제출할 수 있다. 민원 처리 결과는 전자공문서로 통지하거나 통보받는다. 이를 위해 인터넷에 단일전자민원창구가 생긴다. 행정기관의 문서업무는 전자문서를 기본으로 작성·결재·발송·보존된다. 디지털관인 때문에 전자문서는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

 행정기관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나의 네트워크에 맞물리게 된다. 이미 일부는 시행 중이다. 통신망을 이용한 무인민원발급기 ‘키오스크’가 전국 곳곳에 설치됐으며, 2001년 8월 현재 52개 중앙부처 중 28개 부처는 전자결재 처리 비율이 전체 문서처리업무의 50%에 이른다.

 전자정부는 궁극적으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구현를 앞당길 수 있다. 전자정부법은 ‘정부’라는 말이 뜻하듯 ‘인터넷상의 최고권력기관’과 같다. 포스트IT 시대에 전자정부의 위력은 지금의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시나리오 2=디지털 라이프

 2005년 경기도 분당의 한 사이버아파트. 맞벌이를 하는 김씨 부부에게 장보기와 영화감상은신혼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됐다.

 냉장고에 식품이 떨어지면 이를 확인해 인터넷 식료품점에 주문을 하면 그만이다. 거실에 있는 세트톱박스를 통해 좋아하는 영화를 내려받은 후 벽걸이형 모니터에서 감상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김씨는 목적지를 찾기 위해 더이상 지도를 뒤적일 필요가 없다. 인터넷과 위치측정시스템을 갖춘 자동차 덕택이다. 자동차가 자동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목적지까지 최적의 경로를 알려준다.

 김씨 부부는 최근 학원에 가지 않고 센서가 부착된 신발을 통해 댄스 교습을 받고 있다.

 ‘디지털 라이프’는 포스트IT가 만든 또다른 생활 혁명이다. 가정 내 전기·전자제품이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돼 각 기기간 정보교환이나 기능을 공유할 수 있다. TV·냉장고·에어컨·밥솥·컴퓨터·전화기·세탁기, 그리고 아파트 입구나 엘리베이터 내에 설치된 영상카메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은행·백화점·자동차·휴대폰과 만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사이버아파트는 디지털 라이프의 결정체다. 사이버아파트에서는 비디오가게에 갈 필요없이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통해 거실에 앉아 서버에 있는 디지털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요금은 아파트 관리비에 합산돼 별도로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주부들은 자녀가 학교나 유치원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지 TV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 노래교실에 참석하지 못한 주부는 영상 온라인 채팅으로 노래 교습을 받고, 노래방 서비스를 통해 실력을 갈고 닦을 수 있다. 반상회 날에도 굳이 모일 필요가 없으며 회의에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녹화된 동영상을 통해 그때 결정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우유나 요구르트를 배달받듯이 식단을 미리 예약해두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매대행서비스가 가능하다. 집안에 신체부자유자나 노약자가 있으면 원격진료은 물론 화장실의 변기에서 대소변을 체크해 건강상태를 수시로 관리할 수 있다.

 한 전자회사의 광고처럼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의 모든 생활은 디지털로 통한다. 포스트IT가 만드는 디지털 라이프 세상에서는 학교와 가정, 직장이 인터넷으로 이어지고 가정에서는 가전제품 모두가 인터넷과 맞물려 말 그대로 ‘디지털 생활’이라는 개념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시나리오3=디지털 컴퍼니

 2003년 창업한 K사. 조그만 부품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K사에 인터넷은 단순한 온라인 비즈니스의 도구가 아니라 기업경영에 필수적인 기본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온라인을 통해 모든 수발주가 이뤄지면 제품 설계·생산·물류·AS까지 모두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 물론 사내 커뮤니케이션이나 공식회의도 웹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컴퓨터에 전원을 넣는 순간이 바로 출근시간이며, 끄는 시간이 퇴근시간이 돼 버렸다.

 실리콘밸리에만 존재할 것 같던 ‘IT와 웹’은 이제 모든 기업의 관심사다. 디지털 경제 초기 ‘전통기업’과 ‘인터넷기업’을 명확히 가르던 일은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구경제를 대표하던 굴뚝산업과 미래지향적인 신산업 사이의 구분이 점차 없어졌다. 굴뚝기업과 클릭기업 모두 웹과 인터넷 환경에 기반을 둔 사업전략을 구상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바로 포스트IT가 만든 기업의 변화상이다.

 ‘디지털기업’를 위해 20세기 내내 손에 쥐고 있던 경영학 교과서를 과감히 접고 e비즈니스라는 사업 패러다임을 완성하기 위해 앞다퉈 나서면서 기업 환경 역시 자연스럽게 변화의 길을 찾고 있다.

 포스트IT 시대에는 굴뚝기업과 인터넷기업의 합병 또는 인수가 자연스러우며, 두 비즈니스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기업’이 상종가를 칠 수밖에 없다. 웹을 활용하는 능력은 첨단 솔루션이나 성능 좋은 시스템이 아니라 ‘창의력’이라는 진리가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 기술 수준이 서로 엇비슷해져 웹을 어떻게 혁신적으로 이용해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가 사업 성패의 관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포스트IT 시대에 기업 경영의 성공 관건은 누가 뭐래도 ‘속도’ ‘효율성’ ‘서비스’일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디지털기업은 핵심역량에 온힘을 기울이고 나머지는 외주 제작에 맡기며, 물질자산보다는 정보관리에 능한 기업이 최대 수익을 거두게 된다. 지금 주요 기업이 e비즈니스로 독자적인 부가가치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면 포스트IT 시대에는 이를 조직화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생산·판매·구매 등 전통산업의 경영 방식이 IT화 추세에 걸맞게 바뀌며 시장경쟁·구조조정·금융산업 규제 등의 정부정책도 디지털화에 발맞춰 ‘변화의 청룡열차’를 탈 수밖에 없다.

 포스트IT 시대의 기업은 디지털 라이프에 적합한 상품·서비스·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비즈니스의 방향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