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전은 21세기를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미 20세기말부터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변화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앞으로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갈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속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존재한다. 첨단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사람들의 주거환경, 교통, 근무환경, 문화 등이 새롭게 바뀐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IT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지만 이중에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 인위적인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다름아닌 수천 수만년의 인류역사 동안 그 시대 사회환경에 맞춰 조금씩 수정되고 있는 법제도다. 편집자
‘전자정부법, 정보격차해소법, 전자상거래 과세법, 온라인저작권법…’
모두 지난 몇년 사이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법들이다. 이들 법은 이름은 제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IT가 세상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새로 제정된 법이라는 점이다.
IT의 발전으로 전과는 다른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면서 세계는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법 제도를 필요로 하게 됐다. 새로 등장한 ‘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간에 기존 법만으로는 이들 새로운 ‘것’을 규제하기도, 보호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동안 미국 음반산업계를 들썩거렸던 ‘냅스터 소송’만 봐도 기존의 법이 새로운 IT세상을 통제하는 데 얼마나 부족한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음반업계가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음악을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냅스터를 와해시키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존의 법만으로 위법여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았다.
냅스터는 CD나 카세트테이프가 아닌 음악파일을 교환할 수 있는 장소만을 마련해 준 것이고 이를 이용하는 네티즌들도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음악파일을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냅스터라는 일종의 커뮤니티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 비상업적 커뮤니티와 불법음반 유통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냅스터와 음반업계간에 지루한 대치 기간이 이어졌고 결국 미 법원은 저작권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음반업계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태는 일단 정리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법이 ‘디지털’ 세상을 다스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기존 저작권법으로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역시 MP3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음악을 대량 유통시키는 것을 처벌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이처럼 새로운 법제도의 부실함이 발견되고 이로 인한 문제가 커지자 포스트IT 세상에 걸맞은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전자정부법=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부와 국민간의 관계는 전혀 새롭게 재정비되고 있다. 국민이 정부의 일방적인 지시를 받는 관계에서 벗어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행정업무와 관련된 법은 대폭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의 정부가 전자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5, 10년 후에는 또다시 크게 변할 사회상을 담아내기에는 벅찬 점이 없지 않다.
인터넷을 통한 납세·민원·서류발급 등의 행정업무를 완벽하게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반 시스템의 구축도 필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온라인 저작권법=IT의 발전은 모든 문화콘텐츠의 디지털화를 가져왔고 이는 동시에 모든 콘텐츠의 무한 복제를 가능케 했다. 여기에 인터넷의 대중화는 복제와 동시에 콘텐츠가 대량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미국의 냅스터, 국내의 소리바다 사례에서처럼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와 새로운 형태의 유통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는 법제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 오프라인 기반의 저작권법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기에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지만 아직 인터넷 세상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법 제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생명과학 연구 관련법=생명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인간복제’라는 영화속에나 나오던 얘기가 현실화될 날이 멀지않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과연 인간복제와 관련된 생명과학 연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간배아 연구, 유전자 치료, 동물유전자 변형 연구, 인간유전자 연구 등의 허용 범위를 놓고 학계, 종교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다.
이처럼 아직 그 범위를 놓고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기에 생명과학 연구 관련법은 앞으로 제정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전자상거래 관련 법,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법, 디지털화된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법 등 포스트IT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법제도를 제정 노력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포스트IT시대에 맞는 법 제도=이처럼 포스트IT 시대를 지탱하기 위한 법제도는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지만 성공적인 법제도 마련을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멀다.
가장 급선무는 기존의 낡은 인식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1인 또는 소수 집단이 독점해오던 권력의 분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개인 미디어를 소유할 수 있게 됐고 권력에 불리한 정보도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앞으로 권력은 더 이상 권력자의 것이 아닌 대중의 소유물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입법권자들이 새로운 세상을 담아내는 법을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법안 작성 초기단계부터 입법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공개되고 대중이 모든 과정에 참여해야 포스트IT시대를 담을 수 있는 진정한 법 제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론에도 한가지 풀어야할 점이 남는다. 상호간에 이익이 상충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에 대해 어떻게 의견 일치를 이끌어낼 것인가다.
이 부분은 IT 발전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간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이해와 대화가 선행되야 한다. 즉, 사람과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포스트IT 시대를 위한 법제도’, 새로운 가치체계가 부상할 포스트IT 시대를 위한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IT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사람속으로 돌아갈 때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