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뛴다>(르포)첨단IT바람 부는 대륙-만리장성 곳곳 `디지털 깃발`

 하얼빈 출신 조선족인 허홍철씨(28)는 지난달 인생을 바꿀 만한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고향에서 6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선양시에 있는 한 정보기술(IT) 교육센터에 입학한 것. 부인 배광지씨(26)도 남편인 허씨를 따라 같은 학원 기숙사에 머물며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다.

 허씨 부부가 과거 맞벌이로 벌어들인 수입은 대략 월 1700위안 정도. 하지만 지금 다니는 IT학원의 월 수강료는 1인당 3600위안이다. 결국 이들 부부가 6개월의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려면 무려 4만3000위안이 필요하다. 이 돈은 단순 계산으로도 과거 허씨 부부 월급의 2년 6개월치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하지만 “IT교육과정을 마치고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게 되면 같은 직장을 다녀도 3∼4배 이상의 월급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허씨 부부의 계산이다. 그래도 너무 위험한 모험 아니냐는 질문에 허씨는 “중국에서도 IT는 이제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고 젊을 때 한번쯤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오히려 당당하다.

 이 같은 IT열풍은 비단 허씨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電腦:뎬나오)를 구경하기조차 힘들던 중국인들에게 이제 PC와 인터넷은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를 졸업한 디지털차이나의 위리산(于立山) 부총재도 “전기·기계학과에 입학한 지난 83년 계산기를 처음 구경했지만 당시에는 훌륭한 보조기구라는 정도의 느낌만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 위 부총재도 요즘 들어 “80년대 중국 개방화 물결과 함께 대학원을 졸업한 90년대에 일반 IT기업에 대한 취업이 가능하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베이징대에 근무하는 천링(陳凌) 교수는 위 부총재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학부 시절에는 역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대학에서 도서관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IT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실험 역학을 수행하며 IT 분야에 눈을 뜨게 된 천 교수 역시 최근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IT 분야의 인기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제는 미국의 유명 대학이나 기업들로부터 잇따라 들어오는 각종 연수 제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그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됐다. “돈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월급이 많은 IT기업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지만 젊은 후배들과 대학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 계속 대학에 남아 있다”고 말할 정도다.

 IT 분야의 인기상승과 함께 중국인의 생활 곳곳에도 디지털이 빠르게 물들어가고 있다. 베이징을 디지털 도시로 만들겠다는 ‘수쯔베이징(數字北京)’이란 구호가 등장했고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를 의미하는 ‘구이구(硅谷)’이란 용어도 새로 생겨났다. 최근 중국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벤처투자(風險投資)’고, 한국처럼 ‘사이버아파트(數字社區)’ 건설 계획도 한창이다.

  “10년 전 중국행 새벽 기차에서 내렸을 때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다름아닌 거지였고 역 주변이 온통 거지떼로 가득찬 모습을 보는 순간, 중국에 대한 환상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베이징에서 IT 프로젝트 중개업을 하고 있는 쉬원치(徐源基) 사장의 이 같은 경험담은 급변하고 있는 중국인의 생활상을 그대로 말해준다. 2∼3년 전만 해도 오후 5시가 넘어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 완전한 어둠의 도시로 변하던 베이징이 지금은 24시간 살아 움직이는 도시가 됐다.

 쉬 사장은 “DVD로 영화를 보며 사우나를 즐기고 3∼4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휴대폰이 불티나게 팔리는 현실을 보면 막 잠에서 깨어난 중국인들의 저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사이버아파트-"2000만 세대 아파트에 첨단 HA 시스템 구축"

 중국에도 사이버아파트 열풍

 중국인들의 생활 모습을 가장 크게 바꿔 놓을 요소 가운데 하나가 주택이다.

 그동안 국유기업에서 주택을 제공하거나 임대료를 일부 지원해주던 제도가 바뀐다. 주택지원이 없어지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자신의 월급으로 직접 집을 장만해야 한다. 그래서 주택문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중국 정부가 오는 2006년까지 무려 20조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 사이버아파트(數字社區)를 건설키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미 건설된 120만세대와 신규 건설할 2000만세대의 아파트에 각종 홈오토메이션(HA) 설비와 첨단 정보시스템이 들어선다.

 매일 밤 안방에서는 베이징TV가 제공하는 500편 가량의 신작 영화가 주문형비디오(VOD)로 상영되고, 700여개 병원과 3000명의 의사로 구성된 의료보건센터는 지역 아파트 주민들에게 원격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터넷 증권거래와 전자상거래는 기본이다.

 중국 전역에 광대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정부·주거단지·가정·개인서비스 등의 각종 자원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종합적인 디지털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 중국 정부의 청사진이다.

 사이버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는 중국부동산개발그룹의 멍샤오자오(孟哮昭) 총재는 “향후 5개년 발전 계획에 따라 사이버아파트에 첨단정보시스템 서비스를 제공할 1개의 총센터와 14개의 구역센터, 700여개의 지역센터, 2만여개의 단지센터가 별도로 건설되며 이 사업을 통해 중국인의 생활도 혁신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상돈기자>

 

◆휴대폰-패션·고급화 바람 거세다

 노키아 8210 단말기를 구입하느라 2080위안을 썼고, 월 사용료로 1000위안을 내며, 최근 이모티콘을 이용한 문자메시지 전송을 즐기기 시작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직업을 가진 주부 강칭화씨(29)의 휴대폰 사용지표다. 그녀의 남편은 모토로라 제품을 쓰면서 월 500∼800위안 정도의 사용료를 내고 있다.

 도시지역 한 가정에 두 대 정도의 휴대폰 단말기. 이는 이동전화 가입률이 10%를 밑도는 중국 이동통신 시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 휴대폰 단말기를 구입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을 가진 남편과 아내가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경향이다.

 실제 중국의 휴대폰 시장은 26∼30세가 전체 가입자의 29.8%를 차지하며 핵심 소비층을 이루고 있다. 최근 들어 20세 이하 가입자가 늘어나는 추세긴 하지만 아직 비중이 7.3%에 머무르고 있다. 개인 월소득 1000∼2000위안인 휴대폰 가입자가 39.1%, 1000위안 이하가 16.9%로 이동통신 대중화의 기수로 등장하는 추세다.

 브랜드는 모토로라·노키아·에릭슨이 3강 체제(점유율 72% 이상)를 굳히고 있다. 노키아 제품은 전원(배터리)이 오래 가고, 모토로라와 에릭슨 단말기는 통화품질이 좋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 사이를 뚫고 삼성전자 단말기가 ‘다기능, 독특한 디자인’을 앞세워 점유율(5.4%)을 넓히는 추세다. 중국산으로는 보다오(波導)·커젠(科健)·하이얼(海爾) 등이 대표적이나 시장점유율이 0.6∼0.8% 수준에 불과하다.

 강씨는 “요즘 폴더형 단말기가 눈에 들어온다”고 말한다. 중국의 휴대폰 단말기 소비경향이 바타입에서 플립·폴더 등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또 최근 들어 문자메시지 트래픽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변화들은 휴대폰 단말기 패션화 및 고급화의 징조기 때문이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