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뛰어넘자>현지화 전략

 중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많은 기업들이 IT가 앞선 한국 기업이라는 자만심으로 ‘손쉬운 안착’을 기대했으나 중국 대륙은 쉽게 활주로를 열어주지 않는다.

 세계 최대 시장을 갖고 있어 절대적인 ‘갑’이라는 중국인들의 자만심이 국내 기업들이 갖고 있던 알량한 자만심을 뛰어넘고 있다. 또 이미 10여년 전부터 세계적인 기업들이 포진한 상태라 중국인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에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중국 진출 기업들 중 일부는 아예 처음부터 한국 업체로 명함을 내밀지 않고 무국적기업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중국 기업들은 이처럼 국내 기업에 절대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기업들은 중국어에 서툰 한국인 직원들을 최전방 영업전선에 내보내 악전고투하고 있다.

 풍부한 해외 진출 경험을 가진 글로벌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법인대표와 직원들을 모두 현지인으로 채용(현채인)하고 철저한 교육과 고임금 지불 등 장기간의 투자를 통해 기틀을 다지는 등 일정한 룰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진출 경험이 부족한 국내 기업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많은 업체들이 범한 오류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빗대 현지에서는 “10년 전 한국 대기업들이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지불한 비싼 수업료를 최근 중소벤처기업들이 또다시 납부하고 있다”는 비아냥 섞인도 지적도 적지 않다.

 중국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 성공 여부는 철저한 ‘현지화’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기업들이 그동안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멀고도 험한 현지화의 지름길을 알아본다.

 

 ◆외형 갖추기

중국을 향한 첫걸음은 만리장성을 쌓는 기분으로 시작하라.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 내 것 중 내다 팔 수 있는 물건이 뭔지를 깨닫고 난 다음에 중국 시장에 눈을 돌리자. 이제 중국의 대문을 두드려보자.

 ◇1순위는 기술의 현지화=중국에 첫발을 내딛기 전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것이 ‘제품의 적합성’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중국 진출에 앞서 직원을 파견해 철저하게 시장조사부터 파고든다. 조사 결과 시장에서 가장 적합한 제품을 선정한 다음 시장에 진출하며 만약 ‘먹혀들’ 제품이 없는 경우에는 중국 진출을 깨끗이 포기한다.

 국내 업체들도 시장조사를 통해 사전준비를 탄탄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때 주의할 점은 국내에서 나돌고 있는 중국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 크게 부풀려져 있거나 현지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자사 제품과 기술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내부 직원들을 파견하는 것이 중요하며 회사 최고정책결정자가 중국 현지를 체감한 후 진출 여부와 제품 등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중국 진출은 국내 본사의 자금 여력이 풍부할 때 고려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돈’이 없으면 편법에 의존하게 되고 그것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화, 정답은 없다=일단 중국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어떤 형태로 자리잡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중국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들은 크게 독자진출과 합자진출로 나뉜다. 독자로 진출할 경우 합작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없어 현지사무소나 법인을 설립하는 데 시간이 절약된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기업 보호정책이 강해 특별한 경쟁력이 없다면 합작사를 세우는 것이 편리하다. 이 경우 자본만 투자하는 기업보다는 영업 방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동종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주의할 것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너지가 있는 업체라고 판단되기 전까지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충분한 검증기간을 거쳐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일반사무소를 세우고 시장 현황에 따라 법인화를 추진한다. 이때 가장 큰 고민이 법인화 시기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답은 없다. 기술 수준과 유행성, 후발업체들의 진출 여부 등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판단해야한다”고 말한다. 즉 법인화는 마케팅과 영업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될 때 시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법인화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법인등록이 쉽지 않다. 자본금 통장 개설부터 대외경제무역합작부 승인, 공상행정국의 사업자등록증 획득, 세무등록 등 약 12단계에 걸친 지루한 과정을 빠짐없이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수순-현지인 교육이 `최우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합니다.”

 삼성반도체 쑤저우법인 박재욱 사장은 대기업의 중국 현지화도 첫걸음부터 서두르지 말고 계획성 있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국 측이 서두른다고 해서 같이 서두르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게 5년 동안 중국에서 그가 몸소 채득한 비결이다.

 대기업은 진출 초기부터 비교적 철저한 준비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비해 적응이 빠른 편이다. 대기업들은 진출 전에 인력 관리와 공장 설립, 직원 교육 등에 만전을 기해 현지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있다.

 대기업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인력 관리.

 삼성반도체 쑤저우법인은 5년 전 진출 결정이 내려진 후 가장 먼저 시행한 작업은 현지인의 교육이다. 현지관리인 후보생 40명을 한국에 데려와 8개월 동안 집중적인 업무교육을 시켰다. 이는 현지에서 따르는 의사소통과 노사문제 등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교육을 받은 현지인들 중 현재 잔류하고 있는 인원은 20여명에 이르며 실제로 이들은 삼성반도체가 중국 시장에 녹아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LG전자는 인재양성, 생산현장 교육, 어학연수, 중국어 사내방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류(韓類)와 화류(華類)를 한데 묵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LG전자는 우선 중국 현채인들에게 한류식 경영기법을 전수시켜 핵심인재로 키우고 있다.

 최근 중국지주회사에서 근무하는 중국 현채인 13명을 대상으로 ‘중국 HPI(High Performance Individual) 핵심인재 육성과정’을 실시했다. ‘중국 HPI 핵심인재 육성과정’은 LG전자 중국연수원인 러닝센터차이나가 지난해부터 중국 현지화 전략의 일환으로 6개월 동안 LG전자 중국지주회사에 근무하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조직관리, 경영기법 및 문제해결 등을 집중교육하는 과정이다.

 또 대기업들의 중국 현지화는 생산뿐만 연구개발(R&D)·판매·유통 등 전과정을 현지에서 완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한국 내 본사 일부 기능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가 하면 이를 검토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LG전자는 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중국에 이미 중국지주회사(총재 노용악)를 두고 14개 생산법인과 6개 판매법인을 총괄케 하고 있다.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큰 사안이 아닌 이상 모두 중국 현지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도 중국 시장진출 전략으로 중국에서 일어난 사업은 현지에서 해결한다는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또 본사의 주요 기능을 중국에 이전하는 방안을 비롯해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삼성SDI는 이미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의 성공적인 공략을 위해 총괄본부대표제를 검토, 이르면 연내 시행에 옮길 계획이다.

 지난 98년 SK중국(SK CHINA)그룹을 세우면서 중국 현지화에 일찌감치 눈을 뜬 SK는 최근 ‘베스트 중국기업화’란 목표 아래 현지 총괄법인 대표 자리에 중국인 사업가 셰청(謝澄) 인텔차이나 부사장을 선임한 바 있다.

 이밖에 중국 관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현지화의 필수항목이다. 최근 청렴한 젊은 공무원들과의 관계를 위해 뇌물보다는 서로의 요구를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특히 공무원들이 국내 대기업의 우수경영 사례를 옆에서 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