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기로 한 사무실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화사한 상의와 긴 스커트를 입고 얼핏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문을 열고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한미숙 베리텍 사장(39)이었다.
한미숙 사장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초등학교 근처 문방구 앞에서 아이 손을 잡은 채 지나쳤을 만한 평범하고 그저 한없이 편안한 인상을 주는 아줌마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15년을 근무한 베테랑 연구원 출신에 내로라 하는 국내 굴지 통신사업자로부터 인정받는 벤처기업 CEO라는 점만 간과한다면….
한 사장이 설립한 베리텍은 유무선 통신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ETRI 출신 연구원들이 기술을 기반으로 지난 2000년 1월 창업한 연구원 창업기업이다.
창업자인 한 사장은 ETRI에서 15년간 근무하며 MPLS라우터, ATM교환기, TDX 1/10 등 개발을 주도했다. 베리텍의 기술 연구를 총괄, 지휘하는 김기령 연구소장도 ETRI에서 11년간 근무하는 동안 IMT2000 UMTS 지능망 서비스와 지능망 SSP/SCP/IP 개발사업을 핵심적으로 이끌었다.
베리텍이 주력으로 내세우는 제품은 유선, 무선, 인터넷망의 통합서비스 시스템과 이를 응용한 서비스 제품이다. 베리텍은 창업 초기 구체적인 사업 로드맵을 정할 당시부터 한국통신, SK텔레콤 등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와 손잡고 공동으로 제품개발을 진행해 왔다.
벤처기업으로서 출발 당시부터 기간통신사업자와 공동기술 협력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해당 업체가 사업자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인 동시에 그 업체 CEO의 경영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사장이 여성CEO가 드문 통신장비업계에서 창업해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기업인의 반열에 당당히 서있는 비결은 뭘까.
한 사장 자신과 베리텍의 성공에는 무엇보다 한 사장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 그리고 치밀한 시장조사가 바탕이 됐다.
“연구소 시절 교류해 온 통신사업자의 연구소 담당자를 끈질기게 찾아다니며 베리텍이 가진 기술과 제품개발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이전부터 관련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한 연구경력도 도움이 됐지만 사전에 국제박람회나 세미나에 참석, 최신 기술동향을 꼼꼼히 파악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사업자가 원하는 걸 정확히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상 참석하는 자리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자의와 관계없이 군계일학(?)일 수밖에 없다는 한 사장은 이따금 여성CEO에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여성이란 까다롭고 피곤한 존재라는 선입관을 갖고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상대방에게는 능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성이라는 핸디캡이 내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시키는 장점으로 작용하더군요.”
한 사장은 현재 차세대 개방형통신망의 규격을 협의하는 표준화기구인 차세대 네트워크 포럼(NONF) 운영위원이며, ‘Parlay 멤버’ 회원이다.
이밖에 21세기 벤처패밀리와 한국여성벤처협회 임원사, 벤처기업협회, 여성경제인협회, 유망중소기업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있고 한국통신학회, 한국정보과학회, 한국전자공학회, 한국네트워크연구조합 등에 회원 또는 정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