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미국 테러참사로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가 13일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이번 사건이 위기로 작용하겠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정동수기자 dsjung@etnews.co.kr>
미국 테러 대참사와 관련, 국내 경제에 미칠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는 그 상징성만큼이나 국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이후 정부 및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한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미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이번 사태의 전개방향에 대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본사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 13일 본사 대회의실에서 긴급 좌담회를 열고 이번 사태가 국내외 IT경제에 미칠 영향과 과제에 대해 집중 토론을 나눴다.
사회 : 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경영학부 교수
토론자 : 김정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김경신 리젠트증권 상무이사
이희준 전자산업진흥회 이사
◇사회=바쁘신 가운데서도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고가 일어나 전세계가 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국내 IT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시는지요.
◇김정호(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저는 그다지 심각한 파장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단기적으로 수출에 차질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는 시간이 가면 곧 해결될 문제입니다. 오히려 미국정부가 피해복구비와 생활안정비 등을 투입할 것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민간소비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미국이 보복을 가하는 등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경기부진이 지연되는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미국의 대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경신(리젠트증권 상무이사)=주식시장의 경우 낙관적으로 보기에는 이릅니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은 새로운 재료에 민감한데 이번 사건의 경우 악재로 작용, 국내 주식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현재 나스닥시장이 열리지 않아 다행이지만 나스닥이 재개장해 주가가 하락한다면 국내 코스닥시장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코스닥에 올라있는 많은 IT업체들이 자금회전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희준(전자산업진흥회 이사)=테러사건 이후 항공물류가 막혀 몇몇 업체들이 수출에 차질을 빚는 등 단기적인 충격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출주력품인 반도체의 경우 현지에 일주일 정도의 재고가 남아있고 항공물류 문제도 곧 해결될 전망이어서 수출은 정상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대응수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향후 경제도 유동적입니다.
◇사회=의견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대응에 달려있다는 것이군요. 그러면 배후세력을 밝혀내 미국이 보복조치를 가할 경우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인데요. 사태가 장기화됐을때 어떤 예상이 가능할까요.
◇이희준=우리나라는 반도체 등 전자제품이 전체 수출의 39%를 차지하고 전자제품 가운데 29%가 미국으로 수출됩니다. 이처럼 대미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사태가 장기화돼 미국 소비자의 소비패턴이 보수화된다면 우리나라의 경기회복도 그만큼 지연될 것입니다. 당초 기대했던 윈도XP 판매와 크리스마스 특수로 인한 수출확대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경신=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번 테러에 중동국가가 연루돼 있을 경우 발생합니다. 미국이 중동지역에 보복을 가한다면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이고 생산코스트가 높아져 국산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될 것은 자명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 등 경쟁국들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이번 사태가 오히려 쓴약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계기로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얘기해 주시죠.
◇김정호=우리나라 IT산업의 경쟁력은 매우 높은 편입니다. 특히 상용화기술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전통산업과 접목한 홈네트워크, 이른바 정보가전분야에서 승부를 걸어볼 만합니다. 가전분야에서는 전통적으로 일본이 강세지만 통신기술과 결합한 정보가전에서는 우리가 승산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희준=미국의 경기불황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대체시장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수출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죠. 유럽·중남미·중국 등이 접근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특히 중국은 올림픽 개최로 인한 특수로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민간단체가 나서 중국을 개척하고 그 길을 따라 업체들이 진출하는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한중경제협력기금 조성 등으로 민간단체의 중국개척을 측면지원하는 방법도 모색해볼 만합니다.
◇사회=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구조조정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리콘밸리의 경우에도 경기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시도했죠. 앞으로 구조조정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보십니까.
◇김경신=이번 사태로 코스닥이 올해 최저점인 50선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투자자도 손실을 입고 있지만 더 어려운 것은 등록기업들입니다. IT기업이 자금조달에 더욱 한계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한바탕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실제로 이러한 경향은 몸으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사회=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정부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김경신=중소IT업체의 경우 회사존립 여부가 일반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어떻게 끌여들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시장이 무너짐으로 인해 업체들이 자금조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또 채권 등 발행조건과 금액이 너무 까다로운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완화하고 IT업체에 대한 투자금에 대해서는 세금혜택을 주는 등 과감한 정책변화가 필요합니다.
◇김정호=수출의 경우 대부분 상대가 후진국 신생기업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큽니다. 대금회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책적인 차원의 배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수출의 주력인 전통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전통산업에 IT접목을 지원해야 합니다. 기반이 약한 중소벤처의 연구개발 능력을 키우는 정책도 수립해야 합니다.
◇사회=우리나라 IT산업이 자립할 수 있는 경제규모를 형성할 수도 있는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생산업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어떤 전략이 있을까요.
◇김정호=이번 사태는 단기에 그칠 것이지만 장기적인 불황이 더 문제입니다. 자체 경제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비효율적인 기업은 과감히 퇴출돼야 합니다. IT제품 사이클은 점차 짧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포착해야 합니다. 기업은 최대한 빠르게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사업자의 전략적인 접근자세가 필요합니다.
◇김경신=최근 경향을 보면 IT가 안좋다고 해서 너무 바이오나 나노 등에 관심이 높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IT에 엄청난 투자를 해놓았는데 이러한 리소스가 아무런 축적없이 타 분야로 새나가서는 안됩니다. 지금 어렵다고 해서 성급하게 타 분야로 돌리느냐 아니면 좀더 지원을 해서 경쟁력을 높이느냐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이희준=PC방이나 초고속 인터넷처럼 우리만의 아이템을 찾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시장을 쫓아가는 경향을 탈피하고 새로운 모델을 개발한다면 구조적 전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3세대 전화의 경우 일본의 i모드를 따라가고 있는데 이보다는 글로벌한 시장을 뚫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합니다.
◇사회=남들이 주춤할 때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정부와 기업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김정호=삼성이 소니와 메모리스틱분야에서 제휴한 것처럼 경쟁업체라 할지라도 과감히 합종연횡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정부도 산업정책에 있어 이분법적인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옛산업은 무조건 죽이고 미래산업은 무조건 키워야 한다는 시각은 위험합니다. 이보다는 시장 전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바꿀 것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김경신=지금까지는 수요중심이 아니라 공급위주의 산업정책이었습니다. 성장기에는 이러한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체기에 이러한 정책은 십중팔구 실패합니다. 침체기인 점을 감안, 수요기반을 갖추고 수요를 발생시키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또 투자자들도 유행따라 돈을 굴리기보다는 장기적인 혜안을 가지고 투자를 집행해야 합니다.
◇사회=오랜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