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서너번은 대학 취업설명회에 나갑니다. 리크루트 회사는 물론, 아는 선후배를 총동원해 사람 소개를 부탁했지만 원하는 기술인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시스템반도체 벤처기업 TLi의 김달수 사장은 요즘 기술개발보다 더 어려운 숙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체 개발한 디지털신호처리기(DSP)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스템온칩(SoC)으로 사업을 확대하려고 10명 정도 충원을 결정했지만 적합한 기술인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몇달째 공고를 내봐도 시스템기술과 반도체기술을 적절히 융합한 입에 맞는 경력자들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김사장은 아예 경력이 없더라도 총기있는 인재를 골라 ‘키워서 쓰기’로 하고 요즘은 대학 예비졸업자들을 면접하고 있다.
신생 네트워크칩 전문업체 인티게이트 이세현 사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최근 상용화한 네트워크 데이터 변환 전송칩 ‘마코’가 성공을 거두면서 차기 로드맵을 확대하기로 하고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디지털가입자회선(DSL)기술을 반도체와 접목시킬 수 있는 인력은 전무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업 전 몸담았던 대기업에도 동료들이 거의 외국으로 나가거나 창업했고 어렵사리 소개받은 인력은 기존 회사에서 걸려있는 각종 규제 때문에 조건이 복잡해 결국 포기했다.
대신 이 사장은 “어차피 꼭 맞는 사람이 없다면 창의력 있고 열정있는 사람이 낫다”며 벤처정신을 가진 초심자를 뽑았다.
이같은 사정은 비단 중소 벤처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반도체와 같은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도 요즘 인력을 구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오는 2003년까지 시스템LSI사업부 연구개발(R&D) 인력을 두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
중소기업이나 벤처 근무자를 염두에 두고 경력자 모집공고를 내는가 하면 IMF를 전후로 해외에 나간 우수인력을 되찾아 오는 데도 열을 올리고 있다.
산학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뽑아오고 사내에서 부서이동을 원하는 희망자들을 모집하는 등 그야말로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도 비메모리사업을 담당하는 시스템IC사업부의 연구개발인력을 10% 정도 충원할 계획이었지만 회사사정에다 인력품귀로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두고 “메모리 위주의 산업구조가 낳은 불균형 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메모리산업에 대한 투자가 등한시되면서 인력에 대한 투자와 발굴이 게을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IMF 이후 반도체 벤처의 창업이 붐을 이루면서 인력이 분산돼 공급보다는 수요가 많아진 현상이 발생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 때문에 인력확보 차원에서라도 벤처들의 인수합병(M&A)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조심스레 나온다.
아이앤씨테크놀러지 박창일 사장은 “비메모리 반도체사업은 새로운 시스템 동향을 빨리 파악하고 반도체 기술로 집적해야 하기 때문에 양측을 모두 볼 수 있는 고급인력 확보가 관건”이라면서 “공급이 달리는 현 상황에서는 인력을 집중화하기 위해서라도 벤처간 M&A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이나 기업 자체의 교육 프로그램이 더욱 보강돼야하고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IT SoC센터 박장현 소장은 “비메모리 인력 양성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지금이라도 인력양성 계획을 장단기로 나눠 실무인력과 기초기술 개발인력 양성에 정부와 기업, 대학 모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