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응전>국내업계 `비상체제` 돌입

 미국이 테러 용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기정 사실화됨에 따라 중동지역에 지사를 운영하거나 수출이 진행되고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과 벤처기업들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대부분 기업은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해외사업 계획수정에 나서고 있으며 일부 기업에서는 ‘전후 복귀’에 따른 특수효과도 점치고 있다.

 ◇상사 및 정유사=삼성물산은 두바이 지점장을 중심으로 현지 대책반을 구성하게 했으며 본사 직원의 중동지역 출장을 금했다. 플랜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파키스탄의 카라치 지점은 평온하다는 현지 보고에 따라 특별한 행동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

 이란과 이라크, 이집트, 사우디 등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LG상사는 우선 중동지역 출장을 금하고 현지공장과 본사간 긴밀한 연락망을 만들 것을 계열사에 하달했다. 중동지역 지사에는 공공기관이나 인구가 밀집하는 곳에 절대 가지말것을 지시했으며 특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데이터 백업 처리를 강조했다.

 SK글로벌은 12일부터 뉴욕 테러관련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전략팀이 중심이 돼 수출을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사업부문과 인력, 금융, 통신파트를 중심으로 주재원, 주재원의 가족, 그리고 해외 현지인(글로벌 스텝)의 안전을 확인하고 수시 메일 및 전화를 통해 현지상황과 직원들의 안전을 계속 체크하고 있다. 지사 이전 및 주재원들에 대한 철수지시는 없었으나 중동지역 5개 지사(제다, 리야드, 두바이, 카이로, 테헤란)는 비상 근무중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탈출준비(비행기표, 비자 등)를 하고 있다.

 SK는 원유트레이딩팀, 석유트레이딩팀, 리스크메니지먼트팀, 외환관리팀 등 4개팀을 중심으로 상황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두바이에 지사가 있으나 걸프전 당시에도 원유저장기지인 두바이는 공격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사를 철수시키지 않을 방침이다.

 현대정유는 미국 테러가 발생한 날부터 대책반을 만들고 추후 경과를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원유 선적은 1달 전에 보통 마무리하기 때문에 중동전까지 확산되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만약 중동으로 전쟁이 확산됐을 때를 대비해 국내 재고를 최대한 확보할 예정이다. 대주주가 사우디 아람코사로 20년 장기 공급계약이 돼 있는 에스오일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자체 원유 비축물량이 충분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평상시대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이동통신제조업체=대표적인 이동전화단말기 신흥시장으로 점쳐졌던 중동지역이 미국의 보복 전쟁으로 당분간 침체기에 접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국산 이동전화단말기 수출물량인 72억8000만달러의 3%가 중동지역에서 소화됐다. 이는 중국(3.8%), 호주(3.4%)에 버금가고 동남아시아(1.7%)보다 많은 규모로 특히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시장이 매년 7% 이상 성장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중동의 최대 긴장지역인 이스라엘에는 삼성전자·LG전자·현대큐리텔·SK텔레텍 등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단말기를 수출하고 있다. 이스라엘 시장은 420만가입자(보급률 70%)에 CDMA, 유럽형 이동전화(GSM), 시분할다중접속(TDMA) 방식 이동통신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올해에만 CDMA가입자 수가 150만명에 이를 전망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미칠 영향에 대해 장비업체들은 침체된 분위기다.

 지난 98년말 이스라엘에 ‘SCH-411’을 처음 공급하기 시작해 1년 만에 45만대를 판매, 현지 CDMA단말기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 삼성전자는 지난해 40만대 공급(점유율 76%)에 이어 올해에도 65만대를 판매해 60%대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달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인근국가인 이란, 파키스탄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두바이·이스라엘·터키 등지의 주재원과 가족들을 급거 귀국시키거나 안전지역으로 소개중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듀얼폴더형 단말기인 ‘LG-DM510’을 앞세워 이스라엘 시장에 진출, 올 8월까지 8만대를 판매한 LG전자도 당초 연내 이스라엘 공급량을 10만대 이상으로 늘려 점유율 20% 이상으로 올라서고 내년부터 cdma2000 1x 단말기 공급을 개시하려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현대큐리텔의 이스라엘 수출증대 전략도 찬물을 뒤집어썼다. 이 회사는 9월부터 12월까지 이스라엘 다이텔레콤을 통해 현지 CDMA사업자인 펠레폰커뮤니케이션스로 4만5000대 가량의 단말기를 공급할 예정이었지만 잠정 중단키로 했다. 현대큐리텔은 앞으로 다이텔레콤을 통해 사태의 추이를 파악하며 적절한 수출 재개시점을 찾아나갈 계획이다.

 이밖에도 올들어 CDMA단말기 1만여대 가량을 이스라엘로 공급하기 시작한 SK텔레텍(대표 홍경 http://www.skteletech.co.kr)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SI업체=대부분의 SI업체들은 중동지역 출장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데 따른 업무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했으나 한참 불 붙은 중동지역 정보화 프로젝트 추진이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국내업체가 현재 수주작업을 추진중인 걸프 6개국의 국방정보화사업(32억달러)과 사우디아라비아 경찰청 통합정보시스템구축(20억달러), 쿠웨이트 전자정부사업 등 수십억달러 규모 대형 프로젝트는 상당기간 연기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며 오는 23일로 예정됐던 칠레·브라질 등 중남미지역 시장개척단 파견도 대통령의 방문일정 취소로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져 국내 SI업계의 이 지역 정보화사업 진출도 차질을 빚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경찰청 ITS프로젝트 수주를 진행해온 LGEDS는 해외사업지원팀을 중심으로 중동지역 사태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발주가 예상됐던 SI프로젝트 연기에 따른 대책을 논의중이다.

 ◇가전 3사 및 부품업체=삼성전자는 현재로서는 중동 등 위험지역의 주재원들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지만 주재원 가족들의 경우 추석이 다가온 만큼 평소보다 일찍 귀국하도록 조치하는 등 주재원과 가족들의 안전에 대해 만반의 조치를 취해놓고 있으며 LG전자도 이번 테러사태가 중동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현지 주재원과 가족들에 대한 안전을 살피는 한편 위기상황에 따른 각종 비상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가전 3사에서는 이번 사태가 다행히 크게 중동전 등으로 확전되지 않을 경우 유가급등으로 오일달러가 많은 중동지역에서 TV시청과 이동전화사용 증가 등으로 관련 제품의 수요가 급증하는 등 뜻밖의 중동특수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기는 이번 참사가 MLCC·디지털부품·광부품 등 첨단부품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4분기 수출 차질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짜내고 있다. 특히 삼성전기는 이번 사태로 디지털TV 등 고가 디지털 정보기기의 수요감소를 우려, 대맥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각종 브레이커·배전반·몰드변압기·배전시스템 등을 중심으로 500만달러 정도를 수출하고 있는 LG산전은 중국 다음으로 큰 수출시장인 중동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애써 개척해 놓은 거래선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지만 다른 한편 지난 중동사태 이후 전후 복구용 전력설비 주문이 쇄도했던 점을 감안, 오히려 수출을 늘릴 수 있는 호기가 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주력 수출품목이 전력선인 LG전선도 해외사업본부를 중심으로 한 비상점검반을 발족, 사태 진전 여부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전후 복구사업이 전개될 경우 특수가 기대될 수 있다는 난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편 디스플레이 관련 부품업체들은 생산품의 대부분을 디스플레이 제품의 최대 생산국인 한국 내에서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을 내다보면서도 세트업체의 수출부진이 패널업체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정도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부품업체에도 물량감소가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PC업계=PC업계 관계자들은 중동내 PC 및 주변기기 판매량이 미미하다는 점에서 전쟁 발발시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원유 폭등으로 인한 원자재 폭등 △미국 경기회복 지연 및 전세계 경기위축 등의 변수를 더욱 우려하는 모습이다.

 수출물량의 80%를 미국에 의존하는 삼보컴퓨터는 HP 및 e머신즈 등 미국 PC 수출물량이 전량 미국 내수에 판매되는 만큼 전쟁 발발시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 소비자의 구매심리 위축으로 향후 수주물량이 줄어들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이 회사는 최근 수출주문이 급증, 10월 판매수량은 약 40만대(내수포함)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PC경기가 최대 호황이었던 지난해 1분기 월평균 판매량과 비슷한 판매 규모다.

 중동지역에 직접 제품을 판매해온 모니터 업체들은 전쟁 발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하면서도 세계 경기에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단기간 내에 끝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모니터 업체들은 중동지역 판매비중이 2% 정도로 미미하지만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올해 50억달러의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전자 모니터사업부는 올해 자가 브랜드 모니터 제품의 중동지역 판매액이 5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수치의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PC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납품하는 중동지역 물량은 아직 집계가 되지 않아 전체적인 피해 예상액을 집계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반기 중동지역 수출목표 달성여부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달려있다”고 밝혔다.

 ◇벤처기업=미국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벤처기업들도 장단기 대응책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호텔정보화 벤처기업인 포리넷은 이번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경우로 연구인력충원을 최소화하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테러사태로 영업을 위한 솔루션 시연 기회를 놓친 이 회사는 향후 상당기간 불안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상황을 반영해 기존의 중국·일본·홍콩·태국 중심의 영업에 주력키로 했다.

 계측기 업체인 이지디지털은 뉴욕중심의 동부지역 영업망 확대 계획을 6개월에서 1년 정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터보테크는 그동안 추진해온 대미 수출의존도를 낮추려는 대기업·중견기업 등과 제휴하는 방식의 수출다변화 등 장기적 차원의 전략수립에 나섰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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