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CEO>e커플 기업인-우리는 다정한 `부창부수` 잉꼬

 이제 맞벌이 부부는 국내에서도 흔한 모습이 됐다.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부부들을 종종 보게 된다.

 게다가 정보기술 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부부 CEO나 부부 공동 경영 모델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같은 기업에서 아내는 CEO로, 남편은 직원으로 한몸처럼 일하거나 아내와 남편이 각기 독립된 기업체를 경영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이들 ‘부부 CEO’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부부관의 굴레에서 탈피해 서로를 동등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면서 삶의 동반자로 인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기 때문에 돌파구를 찾을 때에는 개선된 방향으로 더 빨리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공동 경영의 길을 걷는다=경기도 안양 벤처밸리에 자리잡은 수치지도 검수 전문업체 지오씨티(http://www.geo-city.com)의 조윤숙 사장(33)과 강군화 기술연구소장 겸 텔레콤사업부문장(34)은 같은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경희대 전자공학부 88학번 동기로 캠퍼스커플인 두 사람은 입학과 졸업시 수석을 번갈아 차지할 정도로 탄탄한 전문지식에다 경력과 기술력을 고루 갖춘 재원이다.

 지리정보시스템(GIS)업계의 ‘홍일점’인 조 사장은 국내에 처음으로 수치지도(디지털맵) 검수 개념을 도입한 장본인. 대학 졸업 후 국토개발연구원에서 7년 동안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조 사장은 지난 98년 9월 과감히 벤처 창업을 감행하는 모험을 택했다.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남편 강 소장은 아내가 창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때 주저없이 찬성했다.

 “창업 후 1년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일에 파묻혀 고생하며 지냈어요.” 덕택에 조 사장은 보란듯이 설립 3년차인 지오씨티를 국내 유일, 최고의 수치지도 검수업체라는 반열에 올려 놓았다. 조 사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해 7월 텔레콤 부문의 신규사업을 벌일 목적으로 한솔엠닷컴에서 근무하던 남편을 전격 ‘스카우트’했다.

 “아내의 제의를 받고 처음엔 고민했지만 텔레콤 사업을 잘 키울 자신도 있고 다른 사람이 가느니 내가 가는게 낫다 싶어 받아들였죠.”

 조 사장도 신규 사업부문은 남편에게 완전히 맡겼다. “남편과는 시도 때도 없이 사업 얘기를 해요. 고민이 있을 때면 사장-직원의 관계를 떠나 둘이 털어 놓고 얘기하고 기술적 조언도 합니다. 남편은 능력면에서나 업무에서 최선을 다할 거라는 점에서 믿음이 가요.”

 “아내는 사리에 밝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죠. 경영스타일도 남성적입니다. 나의 경우 기술에는 자신이 있지만 순간적인 판단에서는 그렇지 못하거든요.” 강 소장은 “아내와 같이 일하게 된 것을 후회 안한다”면서 사장 자리는 넘보지도 않을 거고 영원히 CTO로 남겠다고 말한다.

 

 무선인터넷 게임 전문업체인 컴투스(http://www.com2us.com) 박지영 사장(28)과 남편인 이영일 CTO도 역시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캠퍼스커플로 창업 동지다.

 컴퓨터 게임을 무척 좋아해 친해진 두 사람은 재학중 결혼과 함께 자연스럽게 창업을 택했다. 병역문제에 걸린 남편에게 떠밀려 사장자리를 맡은 박 사장은 7년째 대표이사직을 거뜬히 잘 수행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회사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원래 아내는 사장 타입이 아니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나보다 훨씬 더 CEO로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개발팀장으로 일해온 이영일씨는 두달 전 CTO로 승진했다.

 “만약 누구든 혼자서 사업을 했더라면 잘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회사에 있다보면 무엇보다 서로가 고민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게 좋은 점이죠.” 이 이사는 아내와 같이 회사를 경영하다보니 얻는게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내와 남편은 독립된 CEO=앞의 세 커플이 같은 회사 안에서 공동경영을 펼치는 경우라면 아이코(http:// www.ico.co.kr)의 정진영 사장(37)과 알라딘(http://www.aladdin.co.kr)의 조유식 사장(37)은 서로가 독립된 기업을 경영하는 케이스.

 대학 졸업 후 10년 만에 만나 지난 97년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친구같은 부부 CEO다. 사업 경력을 따지면 정 사장이 몇년 앞선다. 하지만 조 사장도 만만치 않다. 아이코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분야에서 저력을 보이고 있고, 설립 3년째인 알라딘은 짧은 기간내에 성공적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조 사장이 사업을 시작한 데는 아내의 조언이 컸다. 지난 98년 조 사장이 월간 ‘말’지 기자를 그만두고 사업구상을 하고 있을 즈음 정 사장은 남편에게 미국에서 잠시 공부해 볼 것을 권유했다.

 “6개월 동안 미국 UCLA대학 연구원으로 가 있으면서 사업 구상을 가다듬었죠.” 아내와 사업모델을 달리 가진 조 사장은 지난 98년 11월 ‘알라딘’을 세웠다. “아내에게서는 사업 경험을 배우거나 정신적인 도움을 받고 있죠.”

 정 사장은 자신의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남편과 공유하기도 한다. “남편이 사업을 자신감을 갖고 잘 해나가는 것을 보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요.”

 “정 사장은 생활의 지혜가 뛰어나요. 인간관계도 잘 풀어나가죠.” 조 사장의 이같은 평가에 대해 정 사장은 “남편은 원칙적이고 이성적이고 진중한 편”이라며 좋은 남자라고 응수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 회사 내부 이야기는 감춰둔다. “처음에는 남편과 사업 얘기를 했지만 요즘엔 둘다 암묵적으로 거의 안해요.” 대신에 두 사람은 주말에는 항상 붙어 지낸다. “남편은 좋은 영화나 연극 공연이 있으면 꼭 챙겨요. 또 어느 부부들보다 주말에 산에도 많이 가죠.”

 두 사람은 서울대 동아리 연합회 활동을 할 때부터 서로가 알고 지낸 사이여서 지금도 친구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원래 친구였고, 요즘도 그런 생각을 해요. 서로의 생활을 잘 이끌어 가고 도와주죠. 믿음을 가지고 서로가 인생을 헤쳐 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주고 정신적으로 힘이 되주는 사이에요.”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에서 같은 사무실을 쓰는 인터넷 혼수선물 전문업체 엔러버(http://www.nlover.com)의 진윤자 사장(54)과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갑우시스템의 김동승 사장 부부도 각기 다른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사업은 김 사장이 10년 정도 앞서 시작했다. 김 사장은 한국IBM에서 약 20년 동안 재직하며 영업담당 상무를 지낸 영업베테랑으로 지난 89년에 창업했다. 반면 진 사장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 늦깎이로 인터넷사업에 뛰어든 새내기 CEO다. 하지만 진 사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업을 몸에 익혀 왔다. 결혼 전 법률사무소에 다니며 외국기업의 법인설립 일을 돕던 진 사장은 결혼 후 한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다 남편의 회사에서 사무보조를 하며 직장생활을 해왔다. 진 사장이 들고 나온 창업 아이템은 서구식 결혼문화인 ‘웨딩 레지스트리’. 예비 신랑·신부에게 필요한 혼수의 목록을 친지나 친구들에게 보내면, 하객들이 축의금 대신에 이것들을 사서 선물한다는 개념이다.

 “몇해 전 미국에 잠시 머물 때 친구로부터 딸이 결혼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사정상 갈수가 없어 미안했는데 청첩장에 선물 목록이 들어있더군요. 그게 웨딩 레지스트리였던 거죠.”

 진 사장은 한국에 돌아와 남편·조카들과 머리를 맞대고 사업구상에 들어간 뒤 지난해 9월 ‘엔러버’ 사이트를 오픈했다. 현재 엔러버 사이트에는 현재 500쌍 가량의 예비 신랑·신부들이 가입해 있다. 특히 진 사장은 ‘엔러버’를 통해 그동안 간직해온 꿈을 이루게 됐다. “그동안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나면 나도 내 사업을 하겠다고 오래 전부터 꿈꿔왔죠.”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사업에 억척스러워요. 또 비즈니스의 방향을 제대로 파악해서 결정을 잘 내립니다. 지금까지 제가 사업에서 도와 준 것은 없어요. 114로 전화해 고객 번호를 알아내는 일부터 아내는 혼자서 바닥부터 올라갑니다.” 그러면서도 김 사장은 아내의 사업을 수시로 모니터링해 의견을 준다.

 “지난 30년간 고객을 상대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고객의 입장에서 아내의 인터넷 사이트를 모니터링 해주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남편인 나처럼 관심을 가지고 봐줄 수 있는 사람도 없죠.”

 김 사장은 “아내를 보고 요즘와서 느낀건데, 여성 CEO들도 참 일을 잘하는 것 같다”며 비즈니스 동반자인 아내의 의욕과 열성에 박수를 보낸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