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야청청.’
온세계가 끝모르는 불황에 침울해 있어도 중국 만큼은 활기에 차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영토는 갈수록 늘어난다. 중국을 향한 외국 자본과 기업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웬만해선 속내를 보이지 않던 중국인의 표정도 2008년 올림픽 유치 발표 이후엔 확 밝아졌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만 그런 게 아니다. 먼 서부지역도 개발 열기가 뜨겁다. 30년대 마오쩌둥이 이끈 ‘창정(長征)’이 또한번 시작됐다. 이번엔 ‘경제대장정’이다.
반면 미국, 일본, EU 등은 불황 탈출에 안간힘을 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나온 먼지구름은 가야할 길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임전 상태에 돌입한 지난 15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작업반 회의에선 중국의 최종 가입안을 비공식 승인, 사실상 WTO에 가입시켰다.
올림픽 유치에 이어 WTO 가입은 막강한 중국 경제에 날개를 달아줄 전망이다. 바야흐로 ‘중국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웃나라들만 고통스러워졌다.
10년 전 외국인 투자는 동아시아에 70%, 중국에 30%가 몰렸으나 이젠 거꾸로 됐다. 세계 자본과 다국적 기업들이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에 투자한 자금과 생산시설을 빼내 중국으로 옮긴다. 마쓰시타, 도시바, 산요 등 일본 가전업체들은 본사 기능을 아예 중국으로 이전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가전왕국이다. 한국업체에게도 싸구려 대접을 받았던 중국산 가전제품이 내수 경쟁에서 기른 내공을 무기로 선진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을 밀어내고 있다.
중국은 이제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에도 뛰어들 태세다. 백색가전에 이어 디지털가전, 휴대폰, 정보통신, 반도체, 인터넷 등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는 5∼10년내 한국과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돈다.
10년 후에도 한국이 비교 우위인 품목은 반도체 정도이나 최근 중국의 산업 육성책을 보면 이마저도 장담하기 힘들다.
경제사회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아시아 국가들이 15년 이상 걸려 건설한 산업을 중국이 빠르게 빼앗고 있다”면서 “중국의 성장은 이제는 훨씬 지독한 두번째 아시아경제 위기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국은 생산대국이면서도 소비대국이다. 반도체만 해도 자급율이 고작 10%대다.
중국 시장은 세계 IT업체들에게 ‘차이나 드림’을 심고 있다.
그러나 공략하는 게 만만찮다. 세계 일등 제품들이 밀려들다보니 최고 수준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중국시장은 갈수록 커지는데 우리가 팔 수 있는 상품은 도리어 줄어들고 있습니다.”(이송 무역진흥공사 상하이무역관장)
“한국에서 안 팔리는 건 중국에서도 안 팔립니다.”(손진방 LG전자 톈진법인장)
웨야오싱(岳咬興) 상하이재정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중국인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가격에 대해선 만족하나 품질을 최고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국산 가전제품을 보는 시각과 중국인이 한국산 가전제품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똑같다.
어느새 중국 전자산업은 우리가 어찌하지 못하는 ‘높은 존재’가 됐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을 우리만 몰랐다.
우리가 중국시장을 놓고 ‘달걀셈’만 하고 있는 동안 일본과 미국, 유럽연합(EU) 업체들은 전방위적으로 중국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중국 경제가 무조건 난곽적인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의식이 지배해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첨단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낼 지 의문시된다. 국유기업의 개혁과정에서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높다. 벌써부터 빈부 격차도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13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거대시장, 정부와 민간의 높은 의욕, 자본주의에 대한 빠른 적응속도 등을 감안하면 머잖아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의 엔진’이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다는 상하이의 진마오타워는 바로 중국의 미래다. 뉴욕이 20세기 도시라면 상하이는 21세기 도시다. 상하이와 같은 거대 첨단 도시들이 우리나라로부터 불과 2∼3시간 거리에 있다.
중국은 우리에게 최대 경쟁국이면서도 최대 시장이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중국과 함께 21세기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도’ 있으며 ‘거인의 그림자 밑에서 옴짝달싹 기를 못 펼 수도’ 있다. 어느 작가의 말을 빌려쓴다면 “중국을 이웃에 둔 운명을 바꿀 수 없으나 중국시대에 대응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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