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이 20년 후에 창출할 산업 총생산은 최소 500조원에서 최대 2000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는 게 학계 및 업계의 정설이다.
막대한 시장을 창출하는 나노기술의 경쟁력은 기본개념과 그에 따른 지적소유권이다. 우리 정부가 향후 10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자, 30개 핵심기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우리나라를 세계 5대 나노기술 대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이유있는 투자임에 확실하다.
하지만 미국이 20년전부터 나노기술 개발에 공을 들여온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시작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 우리의 인력, 시설, 연구 인프라는 현재 이 분야 선진국의 2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세계기술평가센터(WTEC)가 분류한 종합평가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나노기술 수준은 미국을 100점으로 환산했을 때 25점에 불과하다.
일본 92점, 유럽 90점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를 분야별로 비교해 봐도 나노구조체합성, 소자, 소재에서 각각 10점을 받아 32∼37점을 기록한 미국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비관적인 것만도 아니다.
나노기술의 핵심부분인 나노소자의 경우 D램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차지하며 공정기술을 발전시켜왔고 주변기술 또한 일취월장하고 있다.
소재산업의 경우 산업화에서 개선될 여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국내의 인력 구성은 나노소재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노기반 과학과 기술 또한 국내 몇 그룹이 세계적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1995년 이후 국책과제를 중심으로 대학 중심의 연구가 본격화하면서 최근에는 지름 0.4나노미터, 선간거리 1.7나노미터인 세계 최고수준의 초고집적 나노선 배열 등이 국내에서 개발되는 등 나노기술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좋은 예가 된다.
우리의 소자, 소재, 공정, 장비기술의 발전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인하대, 포항공대, 한국과학원, 한양대 등의 연구중심 대학에서 지속적인 연구성과 및 고급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또 이를 토대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표준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의 연구원들을 비롯해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LG 등 대기업과 다양한 중소기업이 산업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점에서 우리 나노기술의 발전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박경완·박병국·안도열·황성우·이순칠·정윤하·이영희·이정용 교수 등이 학계에서 나노소자와 소재, 측정, 퀀텀컴퓨팅 분야에서 각종 연구를 진행하면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양성, 배출해내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나노전자소자팀을 이끌고 있는 박경완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 석사,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물리학 박사를 거쳤다.
박경완 박사의 주 연구분야는 반도체 나노양자 전자소자 기술분야로 반도체 나노소자에서 양자효과를 이용해 초고집적, 초고속동작, 초저절전 소비특성을 갖는 나노 양자전자소자 원천 기술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LG실트론과 SoI(Silicon on Insulator) 기판의 질향상을 위한 공동연구를 비롯해 표준과학연구원과 다중상태의 양자메모리 구현을 위한 연구, KIST와 실리콘 나노전광소재 개발을 위한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광주과학기술원, KAIST, 경희대 등의 연구진들과 미래 실리콘 나노소자 신기술을 개발중이다.
서울대에서는 국양 교수와 박병국 교수, 임지순 교수 등이 이 분야에서 활동중이다.
이 가운데 박병국 교수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미국 기업에서 연구원 등을 지내며 나노전자공학과 관련된 학문 및 실무를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박 교수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초기 나노전자공학의 핵심주제였던 공명 터널링(Resonant Tunneling) 소자의 수직집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AT&T벨연구소, 텍사스인스트루먼츠를 거치면서 극미세 CMOS 소자의 연구를 통해 실리콘 나노 전자소자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전자빔에 의존하지 않고 30나노미터 이하의 선폭을 구현할 수 있는 측벽응용 패턴 형성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나노 전자소자 제작에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체 개발한 고유의 단전자 트랜지스터 구조와 MOSFET를 결합한 다기능 논리게이트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현재는 전자소자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제전자소자학술회의(IEDM)에서 나노전자공학부문을 담당하는 고체소자분과 위원을 비롯해 국제반도체기술로드맵(ITRS)의 신소자 분야작성그룹 위원, 산업자원부 나노기술산업화 위원을 맡고 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석사, 일리노이대 박사출신으로 서울시립대 교수직을 맡고 있는 안도열 교수는 반도체 양자점(Quantum Dot) 구조를 이용한 양자컴퓨터 구현에 관한 연구를 수행중이다.
안 교수는 최근 3년간 전자빔에 의한 10나노미터 공정, 극저온에서 피코초(pico second) 전지신호 입력 및 측정, 나노미터스케일의 양자구조에 전기신호를 입력하기 위한 마이크로 미세회로 설계, 극저온·고자기장 하에서 양자상태 측정기술, 양자컴퓨터 모델링 기술, 양자신호복원 기술 등 3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양자컴퓨팅 이론을 체계화했다.
안도열 교수가 양자컴퓨팅 이론을 정립했다면 고려대 황성우 교수는 양자컴퓨팅 실험분야에서, KAIST의 이순칠 교수는 양자컴퓨터 개발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대 황성우 교수는 서울대 전자공학 석사와 미국 프린스톤대 전자공학과 박사를 거쳐 90년대 중반에는 NEC의 기초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안도열 교수의 대학후배로 호흡을 맞춰온 황 교수는 나노소자 및 고체 양자컴퓨팅 소자 실험과 관련해 100편 이상의 국제논문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연구활동에 나서고 있으며 고체 양자컴퓨팅 소자 및 회로실험에 필수적인 스펙 영역의 나노소자 측정기술을 보유, 창의적 연구진흥사업 양자정보처리연구단 실험그룹 책임자로 활동중이다.
KAIST 이순칠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물리학 박사를 마치고 벨연구소의 컨설턴트로 활동한 바 있다. 이 교수는 핵자기 공명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양자알고리듬 구현과 관련한 다수의 국제논문을 발표했으며 핵스핀 양자컴퓨터 개발의 주제로 국가지정연구소를 운영중이다. 또 양자정보과학에 대한 해외의 최신정보를 국내에 신속히 전파하기 위해 매년 여름 국내 연구인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하는 한편 한국어판 정보제공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대학 중에서도 나노기술을 산업화하는 데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대학은 산업자원부 지정 나노기술산업화지원센터를 가지고 있는 포항공대다.
나노기술산업화지원센터의 소장과 포항공대 나노기술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포항공대의 정윤하 교수는 산업화지원 기반구축, 장비교육 및 인력양성, 공정상담 및 서비스, 공동 네트워크 구축 등의 방법으로 나노기술의 산업화를 촉진하고 연구효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중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 교수는 90년대 중반 단전자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단일전자메모리셀(SEM) 구조 및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또 최근 들어서는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와 공동으로 단전자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회로시뮬레이션 기법 개발 및 단전자 트랜지스터 회로 전력소모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이 밖에도 기존 CMOS 기술과 접목가능한 단전자 소자구조 및 나노CMOS에 대한 전산 모사기술, 70나노미터급 나노CMOS에 대한 산업화 연구도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북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켄트주립대 물리학 박사를 거친 성균관대 이영희 교수는 국내 탄소나노튜브 연구분야 권위자로 97년 국내 최초로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한 것을 비롯해 2000년부터 탄소나노튜브에 관한 국가지정연구실을 운영하면서 나노튜브 응용 슈퍼커패시터를 제작해 이 분야 세계최고 용량기록을 남긴 바 있다.
삼성종합기술원, 일진나노텍 등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탄소나노튜브 대량합성, 디스플레이 개발, 각종 전자소자, 에너지 저장체 등을 개발중이며 현재 ‘Journal of Nanoscience and Nanotechnology(미국발행)’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재료공학과 출신의 이정용 교수는 KAIST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박사를 거쳐 86년부터 KAIST 재료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교수는 나노분석에 핵심이 되는 결정원자의 배열을 직접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고분해능 투과전자현미경기술(High Resolution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y)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GaN, Ga2O3 등의 반도성 나노입자 및 나노선, 양자점 및 양자점 응용 광소자, 탄소나노튜브, 나노 자성재료 등의 미세구조와 결함의 구조적 특성을 원자 단위에서 연구하고 있다.
99년부터는 국가지정 연구과제로 나노기술 분석에서 요구되는 1Å 분해능을 얻을 수 있는 투과전자현미경 분해능 향상을 위한 결상기술, 전산모사(computer image simulation)기술, 상처리(image processing)기술 개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