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6일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8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열고 21세기를 이끌어 갈 차세대 성장산업 전략을 논의했다.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자동차·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중심을 2010년까지 지식정보시대에 걸맞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꿔 나간다는 전략 아래 특히 IT·BT·CT·NT·ET 분야에 집중키로 했다. 향후 10년 동안 국가 발전을 주도할 5대 신산업의 전략을 발표하는 이 자리에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은 문화기술(CT:Culture Technology)산업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김 장관은 “CT산업은 문화콘텐츠 산업으로 문화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데 필요한 지적 노하우와 물리적 기술이 복합된 신개념”이라며 “70∼80년대의 중공업, 90년대의 반도체 산업을 능가하는 21세기 주력 산업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략 산업”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어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규모는 2001년 8500억달러에서 2005년 1조40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이며 미국의 경우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산업이 군수산업에 이은 2대 산업으로 미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주력분야라고 설명했다. 특히 콘텐츠 산업의 핵심인 게임시장만을 놓고 보면 2003년 2995억달러 규모를 보여 2811억달러로 예상되는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인은 물론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도 낯설은 CT가 IT나 BT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미래 성장 산업으로 대접을 받는 순간이었다.
◇세계 CT산업 2005년 3880조원=문화부를 맡고 있는 김 장관 입장에서는 콘텐츠 산업을 문화 콘텐츠에 한정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실제로 콘텐츠 산업은 문화 콘텐츠 이외에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도 이보다 휠씬 크다. 예컨대 정통부가 내세우고 있는 인터넷 콘텐츠를 살펴보자. ETRI의 ‘세계 인터넷 산업 규모 보고서’에 따르면 99년을 기준으로 세계 인터넷 콘텐츠 산업 규모는 999억달러 정도였지만 2005년에는 2조2808억달러로 늘어나게 된다.
광의의 콘텐츠 산업은 문화부의 문화 콘텐츠나 정통부의 인터넷 콘텐츠는 물론 다양한 디지털 정보 및 서비스, 오프라인 콘텐츠, 모바일 콘텐츠 등을 포괄한다. 세계엔지니어링컨소시엄(IEC:International Engineering Consortium)이 발표한 ‘IT산업 부문별 시장규모 현황과 전망’이라는 보고서는 광의의 CT(Contents Technology)산업이 컴퓨터를 비롯한 정보기기 산업은 물론 통신 서비스 시장 규모를 상회하는 차세대 성장 산업이라는 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서 IEC는 광의의 IT산업을 △통신 단말기, 컴퓨터, 소비자 전자기기 등을 포함한 정보기기 △기간통신과 부가통신 등을 포함한 정보통신서비스 △정보 콘텐츠 등으로 구분했다. IEC는 인쇄, 오프라인 온라인 멀티미디어 콘텐츠, 게임, 데이터베이스, 영상 콘텐츠(영화·비디오·방송·애니메이션 포함) 등을 망라한 정보콘텐츠 시장이 94년 8000억달러에서 2005년에는 3조236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05년의 전망치를 기준으로 하면 광의의 CT산업은 3880조원에 이르는 초거대 시장으로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2005년 7조4290억달러 규모의 전체 IT산업 가운데 콘텐츠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3.5%로 31.3%인 정보통신 서비스, 25.1%인 정보기기 시장을 앞서게 된다.
물론 산업별 분류 체계에 따라 이같은 수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콘텐츠 산업이 향후 하드웨어나 통신서비스 시장에 비해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세계 각국 CT 주도권 경쟁 치열=지난해 7월 선진 8개국의 정상들이 모여 채택한 ‘글로벌 정보사회에 관한 오키나와 헌장’은 디지털콘텐츠 산업이 21세기 핵심 전략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고부치 일본 총리 등 세계 주요 정상들은 디지털콘텐츠 산업에 대한 각국의 입장 차이를 좁히고 경제적 이해의 장으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사실 디지털 콘텐츠 산업이 선진 8개국 정상의 협상 테이블에 오르기 이전부터 세계는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마지막 승부처로 여겨지는 디지털콘텐츠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전을 벌여왔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전통적인 콘텐츠 강국은 물론이고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일본도 굴뚝없는 문화공장에 비유되는 디지털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디지털콘텐츠가 21세기 신산업혁명으로 불릴 만큼 그 위력이나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통적인 콘텐츠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국회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상무부가 산업 육성 일선에 나서고 있다.
‘e재팬’으로 요약되는 일본의 디지털콘텐츠산업 진흥전략은 ‘국가경쟁력은 디지털산업 경쟁력’이라는 모토에서 출발한다. 특히 일본은 국민운동 차원에서 디지털콘텐츠 확산에 매진하고 있으며 관련법률 및 제도정비를 통해 디지털콘텐츠의 비즈니스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말 우정성을 중심으로 산학관 협력체계인 디지털콘텐츠연구회를 출범시켰다. 일본은 모바일 콘텐츠,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의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다른 분야로의 확대도 꾀하고 있다.
영국도 정부 주도하에 디지털콘텐츠 산업의 ‘대영제국’을 꿈꾸고 있다. 지난 97년 ‘신노동당 신영국’을 선거공략으로 내세우면서 총리에 당선된 토니 블레어는 신영국의 핵심으로 지식산업과 문화산업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콘텐츠 산업을 내세웠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세계 최초로 전자상거래 장관으로 임명한 패트리셔 휴위트는 지난해 2월 ‘디지털콘텐츠 분야 육성을 위한 실천’ 계획을 발표했다. 모두 9개 부문에 10개의 전략이 담긴 이 계획서를 요약하면 크게 △디지털콘텐츠 수출 촉진방안 △관련기술 개발 △관련산업의 데이터베이스화 등 세가지다. 영국정부는 이와 별도로 재무부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관련업계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다양한 지원책 마련에 착수하고 있다.
캐나다는 지난 95년 산업청 주도로 ‘정보고속도로 자문위원회(IHC)’를 출범시키면서 디지털콘텐츠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네트워크 강국으로 잠재력 무궁무진=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인구가 400만으로 인구대비 세계 1위다. 무선 이동전화 사용자도 인구대비로는 일본 다음이다. 올 12월 디지털 위성 방송이 실시되면 1000개에 이르는 방송 채널이 생겨 또 다른 디지털콘텐츠의 유통 경로가 발생한다. IMT2000 서비스가 개시되면 고속 무선 인터넷 인프라도 갖추게 된다. 디지털콘텐츠가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인 네트워크 만큼은 세계 강국이다.
또한 각 분야별로 수많은 콘텐츠 업체들이 포진해 있다. 2000년 말 기준 인터넷 콘텐츠사업자(CP)는 1200여개에 이르며 IP사업자 3700여개, 인포사업자 500여개, 전화정보사업자는 2300여개에 달한다. 인터넷 콘텐츠 분야에서만 7700여업체가 사업을 벌이고 있다.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는 2000년 말 기준 951개의 게임업체, 715개의 영화사, 200개의 애니메이션 업체, 576개의 음반 업체, 1359개의 방송관련 업체, 100개의 캐릭터 업체 등 3900여업체가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를 개발, 보급하고 있다. 양 분야를 합치면 1만개가 넘는 벤처기업들이 콘텐츠 산업 분야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1만여개에 이르는 개미군단이 포진해 있는 만큼 잠재력은 무한하다.
◇콘텐츠 강국 코리아=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세계 무대에서 꽃을 피우게 할 정부 정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정통부는 지난 6월 중순 디지털콘텐츠 부문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 5개년 계획(DC Action Plan 2005)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통부는 2005년까지 약 6100억원(민간 포함)을 투자해 △디지털콘텐츠 기술개발 및 표준화 △디지털화 촉진을 위한 산업기반 조성 △디지털콘텐츠 전문기업 중점육성 작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정통부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산하의 ‘디지털콘텐츠지원사업단’을 ‘디지털콘텐츠지원센터’로 확대개편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디지털콘텐츠기술개발단이란 전담 연구조직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한 민간자율에 의한 산업활성화를 위해 ‘디지털콘텐츠산업단체협의회’ 구성을 유도하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멀티미디어기술지원센터 설립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정통부는 2005년까지 1만개의 디지털콘텐츠 사업자를 육성하고 지난해말 기준 1400만달러인 인터넷콘텐츠 수출을 100배로 확대해 14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문화부 역시 올해 6월 ‘콘텐츠코리아 비전 21’을 발표했다. 문화부는 올해부터 2003년까지 국고 및 정부기금 3810억원, 민간자금 4000억원, 기타 736억원 등 총 8546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문화 콘텐츠 산업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현행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디지털콘텐츠 육성을 위한 기본법으로 전면 개편하고 영화진흥법,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등 현재 아날로그 콘텐츠 중심의 문화산업 법령을 디지털시대에 맞게 바꾸는 개정작업에도 나선다.
특히 문화부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메카가 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 서병문)을 지난 8월 24일 개원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설립 첫해인 올해 1862억원을 비롯해 2002년 1390억원, 2003년 900억원, 2004년 910억원 등 연간 1000억원 안팎의 사업비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디지털콘텐츠 산업을 집중 육성하게 된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산하에 게임지원센터, 음악지원센터, 애니메이션지원센터, 만화·캐릭터지원센터 등 4개 분야별 지원센터를 두고 게임, 음악,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 출판(전자책 포함) 등 6개 분야의 콘텐츠산업을 집중 육성하게 된다.
이를 통해 문화부는 게임·애니메이션·캐릭터 분야를 세계적 수준으로, 영화·음악·방송영상 분야를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각각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