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의 지속적인 침체로 해외 반도체 업계가 시설투자 및 공장증설에 소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도 삼성전자는 300㎜ 시설투자를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겠다는 삼성전자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올들어 메모리 가격급락으로 경영 및 투자여건이 나빠져 올해 설비투자 금액을 당초 계획보다 2조원 가량 적은 4조4000억원 규모로 축소한 삼성전자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원가절감의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300㎜ 라인에 대한 투자는 미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아끼지 않겠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300㎜ 양산기술을 확보, 메모리분야 선도업체로서의 면모를 유지하는 한편 300㎜ 투자를 미루고 있는 후발업체와의 경쟁력 격차를 더 크게 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00㎜에 누가 투자하나=올들어 경영 및 시장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반도체 선두그룹 대열에 있는 세계 유수의 반도체 업체들은 300㎜ 라인투자를 강행중이다.
인피니온, TSMC, UMC, 프로모스, 인텔 등은 200㎜ 설비투자 축소결정을 내리면서도 경쟁력 향상에 주요 수단이 되는 300㎜ 시설투자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독일 인피니온의 경우 지난 2분기 드레스덴 공장에 월간 최대 2만6000장을 처리할 수 있는 300㎜ 라인을 구축, 시험운용하고 있으며 대만 UMC와 합자해 설립한 UMCi Pte에 1단계로 36억달러를 투자, 싱가포르 공장에 내년 3분기부터 300㎜ 시설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모젤바이텔릭과 공동으로 설립한 대만 프로모스 신추공장에서는 내년 1분기부터 월 9000장의 웨이퍼를 처리할 수 있도록 투자를 확대하기로 하는 등 메모리 업체로는 300㎜ 투자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만 최대의 반도체 업체인 TSMC는 지난해부터 신추공장에 300㎜ 시설투자를 실시, 지난달부터 0.15미크론 공정의 Fab을 본격적으로 가동한 데 이어 올해 4분기에는 타이난 14번 Fab에 월 최대 3만장의 웨이퍼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인텔의 경우도 지난 1분기 오리건주 힐스보로 공장에 월간 4000장 웨이퍼 처리용량의 300㎜ 라인투자를 실시한 데 이어 내년 2분기에는 리오 란초의 23번 Fab에 월 3만장의 300㎜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UMC와 히타치가 설립한 트레센티가 지난 1분기 일본에 최대 4만장 웨이퍼 처리규모의 300㎜ 설비를 구축했으며 NEC와 히타치의 합작사인 엘피다메모리가 내년 2분기 히로시마 공장에 2만장 처리규모의 시설을 계획대로 구축하기로 하는 등 메모리 업계의 300㎜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투자 미루는 중하위권 업체=반도체 선두그룹에 속해 있는 유수의 업체들이 300㎜에 대한 시설투자를 강행하고 있는 반면 매출부진으로 인한 경영난에 봉착한 중하위권 반도체 업체들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업계 선두그룹에 속한 메모리 업체 가운데는 이례적으로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300㎜ 시설투자를 1년 이상 연기했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당초 23억달러이던 시설투자금액을 18억달러로 축소한 이후 지난달말 투자예정금액 모두가 소진됨에 따라 메모리 불황의 이유를 들어 300㎜ 시설투자 연기결정을 내렸다.
대만 윈본드는 당초 300㎜ 웨이퍼 공장건설에 3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지난달 도시바가 메모리분야 매각의사를 밝히자 도시바로부터 자사 기술팀 인력을 철수하고 300㎜ 시설투자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모젤바이텔릭은 지난 7월 반도체 시장 회복기미가 보일지 않자 메모리 생산시설 확장계획을 보류한 데 이어 300㎜ 웨이퍼 공장 완공시기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대만의 난야 역시 올 상반기 4억달러 이상의 영업손실이 발생하자 당분간 시설투자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300㎜ 웨이퍼 Fab 구축계획을 무기한 연기한 것을 비롯해 메모리 생산시설 증설계획 일체를 내년 이후로 연기했다.
이에 따라 미래 준비차원에서 과감한 300㎜ 설비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선두그룹 업체들과 그렇지 못한 후발업체간의 경쟁력 격차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