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텔과 대만 비아의 특허공방이 겉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다. 대만의 CPU 및 칩세트 제조업체 비아테크놀로지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연방법원에 인텔이 자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 특허기술을 침해했다는 내용으로 제소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비아는 자사의 협력업체 센타워와 공동 개발한 마이크로프로세서 숫자 데이터 저장 관련 특허기술(미국 특허 번호 No. 6,253,311)을 인텔이 불법사용해 ‘펜티엄4’를 개발했다며 이에 대한 제재와 ‘펜티엄4’에 대한 판매중지를 요청했다. 비아는 또 별도로 인텔에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숫자 데이터 저장장치 특허는 CPU가 빠른 정수연산을 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로 만약 미국 법원이 비아의 주장을 인정할 경우 인텔의 입지는 물론, 전체 CPU시장에 상당한 여파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되풀이되는 법정 공방=인텔은 지난 8일 비아가 자사의 펜티엄4 관련 기술 5종을 허락도 받지 않고 사용해 펜티엄4용 DDR SD램 칩세트 ‘P4X266’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며 델라웨어주 윌밍턴시 연방법원에 특허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이에 맞서 비아는 곧바로 지난 10일 인텔이 내놓은 펜티엄4용 SD램 칩세트 ‘i845’가 오히려 자사의 특허기술을 침해했으며 인텔이 불공정 거래를 해왔다며 대만 법원에 맞제소했다. 비아는 나아가 이번에는 아예 미국 연방법원에 인텔을 제소하면서 서드파티인 센타워가 미국 특허권을 가진 마이크로프로세서 숫자 데이터 저장 관련 특허도 추가했다.
◇제소 배경=두 회사의 갈등은 시장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근저에 깔려있다. 비아는 인텔과 AMD의 CPU를 지원하는 칩세트를 생산하면서 전세계 칩세트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업계 1위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비아가 최근 직접 CPU사업을 하겠다며 사이릭스로부터 인수한 기술로 개발한 ‘C3’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인텔로부터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인텔은 비아를 비롯한 대만의 칩세트 및 주기판 업체들이 너무 덩치가 커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칩세트 및 주기판을 출시하기로 하고 펜티엄4 등 주요 제품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아가 펜티엄4용 DDR SD램 칩세트인 ‘P4X266’의 출시를 강행하자 인텔은 급기야 제소라는 무기를 택했다.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인 비아도 칩세트는 물론 CPU에 대한 인텔의 특허침해를 주장하고 나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파급효과 및 향방=두 회사의 이번 공방은 주기판업체와 유통업체 등 주변업체에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비아의 칩세트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아 이미 이를 탑재한 주기판이 대만은 물론 국내에 상당수 수입돼 유통되며 조립PC업체들도 꽤 많은 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제품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 여파가 국내업체들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텔이 DDR 버전을 지원하는 칩세트를 내놓지 못하고 있고 SD램용 i845 칩세트도 공급이 달리는 시점이어서 양사의 법정공방 때문에 비아측의 칩세트 수요가 당장 위축되거나 인텔의 펜티엄4 판매량이 급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는 반도체 특허분쟁의 속성상 특허료를 지불하는 선에서 합의를 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두 회사는 지난 99년 분쟁시에도 이렇게 해결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