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한가위-넉넉한 대보름달 아래 안방극장 `상차림`푸짐

 명절이면 극장가를 찾는 게 풍속도처럼 돼 버렸다. 그러나 굳이 극장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다. 가까운 비디오 대여점을 찾으면 최신 작품들을 마음껏 골라 감상할 수 있고 그동안 미뤄온 명작들을 하나하나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에 가장 많이 찾는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작. 통쾌하고 시원한 장면과 대작의 화려함은 풍성한 한가위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로버트 드니로의 ‘15분’은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을 장식한 대표작. 카리스마와 따뜻함이 묻어나는 뉴욕 강력계 형사 에디 플레밍(로버트 드니로 분)과 악랄한 두 범죄자의 쫓고 쫓기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러셀 크로가 주연한 ‘글래디에이터’는 작품상을 포함해 올 아카데미상을 휩쓴 대작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화제작. 로마의 제2인자 막시무스 장군은 가족이 살해되고 노예로 팔려가는 수모 끝에 검투사로 변신하면서 코모두스 황제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트래픽’은 최근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더버그 감독의 역작. 멕시코 티후아나의 마약단속 경찰,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마약단속국장,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암흑가 보스의 아내와 그녀의 주변모습 등을 감정을 배제한 채 다큐멘터리식으로 펼쳐간다. ‘트래픽’의 미덕은 마약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세 가지 사건을 접목시킨 치밀한 구성에 있다.

 동심이나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이나 애니메이션 가운데 못본 작품이 있다면 대여목록 1호다. 이란 마지드마지디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은 신발에 얽힌 어린 남매의 에피소드를 잔잔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나간다. 순박한 어린이들을 통해 진실된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또는 ‘하얀 풍선’과 맥을 같이한다.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심슨가족’ 시리즈는 어른까지 맘껏 웃게 하는 코미디다.

 ‘환타지아 2000’은 미키마우스·도날드 덕·안데르센의 장난감 병정 등이 출연해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 동심을 일깨워주는 애니메이션 작품.

 최근작으로는 ‘치킨런’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아드만스튜디오가 할리우드 메이저인 드림웍스의 지원 아래 만든 첫 장편 클레이애니메이션이다. 닭장에서 알만 낳다가 순순히 도살당하는, 아무 생각없을 것 같은 닭들이 자유를 꿈꾼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의인화된 닭들은 저마다 캐릭터를 갖고 있으며 암탉과 수탉의 로맨스도 묻어난다. 닭과 관련된 수사와 우스갯소리를 총동원하는가 하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 못지 않은 스펙터클이 있어 가족용 애니메이션으로 추천할 만하다.

 ‘빅 베어’는 언제 봐도 좋은 고전이다. 장쾌한 로키산맥을 배경으로 곰과 소년 해리의 우정이 화면 가득 넘쳐난다.

 가족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는 드라마와 웃음을 선사하는 코미디도 빼놓을 수 없다. 브루스윌리스 주연의 ‘키드’는 40살의 ‘나’와 8살의 ‘나’가 시공을 넘어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동화 같은 상상력을 코미디로 엮어낸다. 영화를 보면서 어른은 어린 시절의 꿈을, 아이는 어른이 된 자신을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독특한 캐릭터의 아역배우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가 출연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소박한 소재로 출발하지만 큰 감동을 준다. ‘작은 도움’이 진실하게 작용하면 인간의 마음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없애주고 각자 갖고 있는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다.

 흑백 갈등의 문제를 따뜻한 애정으로 풀어낸 감동의 드라마도 있다. 보아즈 야킨 감독의 ‘리멤버 타이탄’은 흑백선수로 구성된 풋볼팀의 인간 승리를 다루고 있으며,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인딩 포레스트’는 흑인 문학소년의 재능 계발에 관한 보고서다.

 스릴러는 좀더 치밀한 구성과 반전에 흥미를 느끼는 마니아 가족에게 좋은 작품. 영화 ‘패스워드’는 기술이나 정보의 독점은 디지털 시대에 무소불위의 권력독점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슬라이딩 도어즈’를 연출한 피터 휴잇 감독이 다소 무거운 주제를 청춘물 같은 인물 구성과 스릴러 기법을 통해 깔끔하게 처리한 점이 돋보인다.

 DVD는 가격이 비싸지만 5.1서라운드 입체음향과 고화질을 바탕으로 극장에 버금가는 진한 감동을 얻을 수 있어 좋다. ‘매트릭스’ ‘라이언일병 구하기’ 등은 비디오에서 느낄 수 없는 특수효과와 음향을 생생하게 재현해준다.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이른바 고전이라는 명작도 쉽게 구해볼 수 있다. DVD는 또 비디오와 동시출시가 보편화되면서 최근작 감상도 한층 쉬워졌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