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생산라인(FAB)을 갖지 않은 중소 시스템반도체업체들이 공동 사용할 수 있는 비메모리 전용 FAB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ASIC설계사협회 정자춘 회장(아라리온 대표)은 “하이닉스반도체의 노후 FAB을 약 3억달러에 인수해 회원사들의 전용 생산라인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미세공정기술은 다소 떨어져도 월 1만5000장 정도의 규모를 가진 비메모리 생산라인 1개면 일단 충분하다”면서 “인수자금은 회원사들의 공동 출자를 중심으로 외자유치와 정부지원금을 확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미 협회측은 이 안을 두고 지난해부터 사전조사는 물론 자금확보 방안에 대해 논의해왔으며 정보통신부·모건스탠리 등과도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해왔다.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하이닉스와도 비공식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하이닉스는 “공식적으로 제안을 받은 바 없으며 지난해 중소업체들이 수탁생산(파운드리) 서비스를 받지 못해 그러는 것 같다”고 일축했다.
정보통신부측은 “지난 3월 협회와 하이닉스측을 함께 만나 이같은 안을 놓고 비공식적으로 협의한 적이 있다”면서 “중소업체들이 FAB 인수비용과 운영비, 추가투자비를 조달할 가능성이 없는데다 너무 무리한 발상인 것 같아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전용 FAB 왜 주장하나=대기업 위주로 진행돼온 파운드리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작용했다. 지난해 반도체시장이 호황을 이루면서 중소업체들은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생산업체를 잡지 못해 제 때 양산을 못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파운드리 서비스를 받기가 용이해졌지만 지난해같은 경우가 되풀이되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 중소업체들의 주장이다.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흩어진 중소업체들의 역량을 한데 모아 전용 FAB을 운영하는 독립법인을 만드는 한편, 업계를 대표할 수 있는 규모의 기업으로 크기 위해 내부적으로 인수합병(M&A)을 추진하겠다는 생각도 깔려있다.
◇만만치 않은 반대=그러나 이에 대해 중소반도체업체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재 시제품 제작조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양산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업체도 몇 없는 상황에서 과다한 투자로 오히려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한다.
또한 하이닉스는 물론, 아남반도체·동부전자의 파운드리 FAB도 남아도는데 수천억원의 비용을 투입한다는 것은 과시욕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소업체들이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하이닉스나 정통부측도 협회측이 어렵사리 당장의 인수자금은 마련할지 몰라도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와 운영비, 공정기술 등을 확보할 노력이면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대신 정부가 지원하는 시제품제작서비스(MPW)를 활용, 생산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협회는 정부자금이 확보되지 않더라도 회원사들의 출자와 외자유치를 확대해 전용 FAB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