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생명의 느낌

 *생명의 느낌/이블린 폭스 켈러 지음/김재희 옮김/양문 펴냄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1902∼ )은 유전자 지도에 대한 단초를 처음 제공한 주인공이다. 그녀가 유전자의 ‘자리바꿈(transposition:특정 기능을 발휘하는 유전자의 한 단위가 통째로 자리를 옮기는 것) 현상’을 발견했을 당시 생물학계에는 아무도 이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이후 유전자 지도 완성의 초석이 됐다.

 매클린톡은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는 기본 메커니즘이 사실상 모든 생명체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유전자의 자리바꿈은 이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그녀는 두가지 과정으로 자리바꿈을 설명했다. 하나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염색체의 어떤 인자가 빠져 나오는 과정이고, 다음은 그렇게 빠져 나온 유전인자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끼어드는 과정이다.

 사실 유전자가 핵산이라는 사실조차 발견되지 않은 당시에 매클린톡이 제시한 유전자 이론은 너무나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30년의 세월이 흐를 때까지 그녀의 성과는 학계에서 철저하게 무시됐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바이러스, 미생물, 초파리, 고등동물 등에서 자리바꿈 유전자가 발견되고 그 기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매클린톡의 유전자이론은 돌연변이가 단지 우연의 소치일 뿐이며, 생명체는 자연도태에 의해 진화해 갈 뿐이라는 고전적인 견해를 뒤집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론에는 한 생명체의 생존경험을 통해 유전자가 어떤 내용을 ‘습득한다’는 개념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이후 조명받기 시작한 매클린톡은 1983년 생리의학 부문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연구 성과가 시대를 앞서 유전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순간이었다. 1923년 코넬대학을 졸업한 후 최소한의 생계비를 걱정하면서 평생 홀로 연구를 수행해 온 그녀로서는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이블린 폭스 켈러 교수가 쓴 매클린톡의 전기인 이 책은 제도권에서 배제된 여성 과학자, 즉 ‘이중의 이방인’인 매클린톡의 외로운 과학 투쟁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매클린톡은 누가 무슨 상을 받았고, 누가 무슨 특허를 내서 돈을 얼마 벌었고, 얼마짜리 프로젝트를 따냈고 따위의 말들이 판치는 과학계를 투기꾼들이 모인 시장판이라고 꼬집고 있다.

  또 이성(理性)의 힘을 맹신하고 인류의 자연 지배를 정당시해온 기존 제도권 과학에 대해서도 ‘생명을 위한 과학’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