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
많은 사람들은 공학박사의 사이버생활은 무언가 다르려니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35년전 대학원 시절부터 컴퓨터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탓에 사이버생활이래야 일상생활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컴퓨터는 내 생활에 있어 용량이 커진 계산기에서 자동화된 타자기 역할까지, 그리고 인터넷이 보급된 최근까지 수년간 완전한 통신수단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종이에 인쇄된 신문을 보는 데 익숙하고 저녁 TV 뉴스는 꼭 제 시간에 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중요한 서류는 하드 카피를 팩스로 받는 걸 좋아하며 초청장은 인터넷으로 받는 것보다는 인쇄된 두꺼운 종이로 받는 게 기분이 좋고 응할 마음도 생긴다. 사이버생활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일정부분에서는 문명의 이기가 나오기 이전의 원시적인 생활을 고집한다.
며칠전 저녁을 같이 한 필립연구소의 하우제르 사장은 MIT 전산소장이었던 마이클 더투조스 교수가 최근 갑자기 작고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는 학생시절에 전산실에 있던 컴퓨터를 놓고 서로 먼저 쓰겠다고 다투던 동창생이다. 특히 전산소장을 하면서 “무엇이 될까?”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사이버사회의 미래상을 보여준 사람이다. 나는 세계적인 컴퓨터 전문가로 알려지지는 못했으나 같은 시기에 세계 22위 정보국가였던 우리나라가 고속통신망 보급에서 세계 일등이 되는데 미약하나마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늘 갖고 생활한다.
지역구 젊은이과 채팅하는 국회의원은 인터넷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민들과 직접 만나는 스킨십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렇게라도 바쁜 시간을 쪼개 지역구민의 여론을 경청하는 것은 사이버 전문가로서 보다는 훌륭하고 효율적인 국회의원의 생활방식이다. 사이버공간은 실제생활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보조공간이지, 실공간을 대체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채팅을 못하거니와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채팅을 하는 속도로 타자를 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다.
저녁에 TV 뉴스를 보고 아침에 신문을 보니 인터넷 신문을 보는 일은 별로 없다. 전화 자동응답기를 쓸 줄 몰라 전자우편에 의존한다. 전자우편의 언어는 격식이 없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 것보다는 편리할 때가 많다. 학생들이 사무실을 자주 비우는 교수와 통신을 하려면 메일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사진이나 긴 문서를 보내는 일도 전자우편으로 하면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아직 비디오 클립을 주고 받는 것은 불편하다. 전송속도가 빠르더라도 표현장비(LCD나 CRT 모니터)가 동영상에 적합하지 않다.
사이버공간의 작업은 새로운 생활방식이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종전의 내 생활을 좀더 생산적이고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직도 컴맹이 있는 것은 컴맹이 게을러서 컴퓨터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보기술이 덜 발전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사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게 우리나라가 정보고속도로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깔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