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 대리는 최근 밤 12시 이후 TV를 켠다. 지상파 채널에서는 이미 애국가가 울려퍼졌지만 케이블TV의 황금시간대는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요즘 그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동아TV의 ‘2001 파리 국제 란제리쇼’.
속옷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모델들의 늘씬한 몸매가 늦은 시각까지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밤 12시 이후 미성년자 접근 금지!’를 외치며 케이블TV가 뜨거워지고 있다.
24시간 전파를 타는 케이블TV가 ‘미성년자들이 잠든 사이’를 틈타 색깔있는 성인물들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것. 최근에는 고정 성인 블록을 편성하는 채널들도 생겨 잠못드는 성인들을 적극적으로 유혹한다.
동아TV와 SDNTV가 밤 12시 이후 편성하는 란제리 및 수영복 패션쇼는 케이블TV 성인 대상 프로그램의 대명사격이다. 얼핏 소재만 들어서는 수준 낮은 ‘눈요기쇼’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파리·이탈리아 등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컬렉션만을 모았다는 점에서 볼거리가 의외로 풍성하다.
동아TV는 꾸준한 성인 시청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올 11월부터는 ‘란제리 종합 정보 프로그램’도 기획중이다.
이벤트TV의 ‘미성년자 금지구역’(매일밤 12시 30분)은 제목처럼 노골적으로 성인 시청자를 겨냥한다. ‘AV 훔쳐보기’ 코너에서는 ‘영화 대 영화’의 형식을 도입해 두편의 에로 영화를 MC들의 재치있는 말솜씨로 소개한다.
한주 동안 이슈가 된 성인문화를 토론하는 ‘줌 인 섹슈얼리티’나 한국 영화에 나타난 성인문화를 진단해보는 ‘에로틱 한국 영화사’도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농도짙은’ 코너다.
개국 초기부터 성인 전용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했던 코미디TV의 ‘서바이벌 여인천하’(수 새벽 1시)는 화려한 미녀들의 경연장이다. ‘섹시한 걸’ ‘날씬한 걸’ ‘멋진 걸’ 등으로 이름 붙여진 6명의 미녀들이 야외에서 각종 게임을 펼치다보면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속출한다.
영화를 빼고 성인물을 말할 수는 없다. 영화채널 OCN도 매주 금요일밤 12시에 ‘성인 전용관’ 블록을 만들어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 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애마부인 시리즈’ 등 지상파TV에서는 절대 상영이 불가능한 영화들을 내보낸 데 이어 앞으로도 ‘속 개인교수’ 등 강도 높은 성인영화들이 방영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케이블 채널들이 점점 ‘야해지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자칫 ‘성인만을 위한 콘텐츠’라는 미명 아래 지나치게 선정적인 프로그램들이 활개칠 수도 있다는 것.
SDN 관계자는 “지상파와 차별화된 성인물을 방영함으로써 케이블TV 고유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는 프로그램은 심의를 받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