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의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사람, 택시를 자가용으로 부리는 사람 그리고 서울 생활 2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고 지독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넘쳐 나는 IT업계에도 마치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별난 인물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특히 남들이 보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행동의 이면에는 독특한 삶의 철학과 경영 노하우가 배어 있어 눈길을 끈다.
앞에서 사례로 든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3명의 남자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두 사장이라는 점과 또 하나는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각 분야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5개의 휴대폰 주인공은 벨소리 다운로드와 소액결제 서비스 업체로 톡톡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다날의 박성찬 사장(38)이다. 항상 성실한 모습의 박 사장이 011, 016, 017, 018, 019 등 사업자별로 5개의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이유는 단 하나. 사업 특성상 통신사업자와 빈번하게 만나야 하는데 어느 한 회사 휴대폰만 들고 다니면 도리가 아니라는 신조에서다. 작은 일 하나라도 신의를 소중이 여기는 철학과 무조건 발로 뛰는 성실함 때문에 다날은 불과 2년 만에 인터넷 결제 솔루션 분야에서 다른 업체가 감히 넘보지 못할 아성을 쌓는데 성공했다. 박 사장이 걸어 온 길도 한 편의 소설 스토리다. 박 사장은 고려대를 다니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건설업에 뛰어 들었다. IMF로 건설업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IT분야에 진출, 학맥과 인맥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서비스 분야에서 보란듯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요즘 ‘다가오는 날이 다 좋은 날’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IT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늘어 나고 있다.
택시를 자가용으로 부리는 사람. 인터넷 키워드 서비스로 유명한 넷피아닷컴 이판정 사장(37)은 아직까지도 자기 차가 없다. 대신 모범택시가 이 사장의 발이다. 넷피아 사옥 앞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범택시가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인터넷 키워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쏠쏠한 수입을 올리고 있음에도 이 사장이 택시를 선호하는 이유는 독특한 경영 철학에 연유한다. 먼저 택시 운전사는 서울 시내의 교통 상황이 훤하기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을 일이 없다. 주차 역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또 사원들도 빈 택시를 언제든지 이용해 업무 효율을 올릴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동아대 법대를 중도에 그만둔 이 사장 역시 다날 박 사장과 마찬가지로 맨 땅에서 성공한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자. 별다른 배경과 돈이 없어 결혼할 때 양가로부터 받은 예단 비용 600만원을 직원들 월급으로 주고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키워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할 정도로 성공 신화를 일궈 냈다.
마지막으로 서울 생활 20년이 넘지만 촌사람보다 더 지독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 스스로 거리낌 없이 빈농 출신이라고 말하는 인포웹 노종섭 사장(46)을 만나면 구수한 사투리에 절로 웃음이 난다. 경남대를 졸업하고 한일합섬을 거쳐 자동차 원격시동 업체를 운영하다 인터넷 시장에 뛰어 든 노 사장 역시 주변의 도움 하나 없이 자수성가한 최고경영자다. 경영자는 ‘철두철미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노 사장은 후발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저돌적인 사업 추진력으로 e메일 발송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인터넷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외모와 말투지만 경영 철학과 가치관은 날고 기는 신세대를 무한하게 할 정도로 감각이 있다. 노 사장은 ‘직원이 부자가 돼야 회사가 잘 된다’는 경영 철학으로 지금도 사장이기보다는 직원의 한 명으로 인포웹의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