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영화 빰치는 현실 속 테러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본능 중에 ‘공포’라는 것이 있다.

 이 공포는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이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큰 공포는 아마도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오래전부터 죽음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인류가 탄생한 초기에는 신화의 형태로 창작됐고 그 다음엔 소설로, 현대로 들어서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새롭게 각색되고 있다.

 공포영화는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자극함으로써 흥행을 거두는 것이 목적이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공포영화는 수없이 많다. ‘13일의 금요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양들의 침묵’ 등 살인마의 광기를 다룬 영화가 있는가 하면 ‘타이타닉’ 같이 불의의 재난을 다룬 영화도 대히트를 기록했다.

 또 테러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도 공포를 자극함으로써 흥행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왜 이러한 공포물, 테러영화에 심취하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공포에 대해 사람들이 공포를 미리 체험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타인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봄으로써 ‘나는 살아있다’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비행기와 승객을 폭탄으로 사용한 비극적인 테러사건은 오히려 영화적인 상상력을 능가해 버렸다.

 비행기 납치와 건물 폭파 등의 테러를 다룬 영화는 꽤 많았다.

 그러나 승객을 가득 태운 비행기로 고층건물을 폭파한다는 내용의 테러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뉴욕의 비행기 폭파 테러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종전에 제작됐던 비행기 납치나 건물 폭파를 다룬 영화들은 이제 ‘시시한 사건’으로 평가절하될 것이다. 영화란 현실보다 더 부풀려져야 하는데 뉴욕의 비행기 테러를 능가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현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상상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뉴욕 비행기 테러사건을 능가하기 위해 인간의 상상력이 더욱 잔인하고 끔찍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미국과 전세계는 이번 비행기 납치와 폭파 테러에 대해 경악하며 철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영화계에서는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이 당분간 어려워질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개봉을 앞둔 테러 관련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 시기를 연기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뉴욕 비행기 테러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감상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영화를 보며 몸서리치지는 않을까. 그런 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