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응용기술 분야에서 기초기술 분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정부가 민간기업에서 비용부담으로 난감해하는 대형 연구개발과제에 관심을 쏟고 있어 상대적으로 비용부담이 큰 기초분야 연구과제가 많은 출연연들이 기대감을 갖고 있다.
28일 정부 및 출연연 관계자에 따르면 정치인이나 정부 인사가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할 때면 의례껏 국내 정보기술(IT) 연구의 본산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찾았으나 최근 기초연구나 대형과제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나 기계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 등을 선호하고 있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IMF이후 응용연구가 위기의 국내경제를 살릴 ‘돈줄’이라는 인식하에 실용화 연구 투자에 집중해왔던 정부가 이달 초 미국 테러사태 등으로 IT산업이 침체되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과학기술계도 이같은 정부의 인식전환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데는 국내 경제여건상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28일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날 행사에 참석한 후 대덕연구단지내 기초과학지원연을 찾은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것을 응용만 할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을 발전시킨 뒤 응용분야 연구와 연계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김 대통령이 연구단지를 방문하는 일이 이례적이지만 요즘 잘나가는 출연연보다는 기초과학기술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출연연에 관심을 나타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과학기술계는 그간 ‘정부가 지나치게 응용분야의 연구개발 성과에만 매달려 2∼3년 후 그동안 축적되어온 응용기술이 바닥나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오던 터에 김 대통령의 방문이어서 더욱 기대를 걸고 있다.
또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은 28일 한국과학재단에서 가진 27개 출연연 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출연연의 안정적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내년 출연연의 정부 지원예산이 올해보다 18.1% 증액된 6962억원에 달한다”며 “출연연구기관도 연구의 생산성을 높여달라”고 당부했다.
내년 예산 중 출연연이 자체적으로 활용 가능한 기관고유사업비를 1519억원으로 책정, 올해에 비해 79억원 늘렸으며 인건비 지원비율도 38.6%로 증액하는 등 안정적인 연구분위기 조성에 노력하는 흔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나노나 생물, 화학, 기계, 재료 등 기초분야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경우 기관고유 사업비 증가율이 다른 출연연의 세배에 가까운 15.5%에 달해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27일 대덕연구단지를 찾은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도 기계연구원·생명공학연구원·항공우주연구원을 방문, “비전없는 과제를 정리하고 취약한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과학재단 수리과학전문위원인 김인묵 박사는 “기초연구가 곧 창의고 상품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며 “정부가 단편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철학을 갖고 투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 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