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보기술(IT) 교류협력의 밀알’. ‘젊은 대학생 못지 않은, 사랑과 관용이 베어나는 열정의 학자’.
이같은 영예로운 수사가 따라붙는 주인공은 다름아닌 박찬모 통일IT포럼회장(67·포항공대 대학원장)이다. 이 두마디는 박찬모 회장이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은 한달에도 수차례씩 포항과 서울을 오가며 강의와 남북IT교류에 정열적인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박 원장은 지난 27일 대북 IT전문가들의 모임인 통일IT포럼이 발족한 지 1주년을 맞아 대규모 세미나를 치르면서 남다른 감회와 보람을 느꼈다.
“통일IT포럼이 민간차원의 남북간 IT교류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남북의 균형있는 IT분야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남북 경협에 기여하겠다는 창립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덕택에 지난 1년 동안 뜻깊은 성과들을 거두기도 했죠.”
실제로 통일IT포럼은 매달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남북IT교류의 현안과 과제를 짚은 뒤, 이를 토론집과 통일칼럼의 형태로 담아내어 정책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직접 방북해 북한의 대표적인 IT연구개발 기관인 평양정보쎈터(PIC)와 협력키로 하고 분단 사상 처음으로 남북간 정보기술도서 교류를 성사시킨 것은 정말 커다란 성과입니다.”
박 회장은 창립 1주년 기념 세미나에 일본 총련산하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 소속의 리상춘 위원장을 주제발표자로 참가시켜 한국-조선-일본간 IT교류를 추진키로 한 것과 포럼 회원사인 하나비즈닷컴이 주축이 돼 남북 첫 IT합작사인 하나프로그람센터를 설립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라고 강조한다.
“북한의 정보기술 과학자들은 통일IT포럼에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총련도 마찬가지고요. 포럼이 이익과 정치색을 배제하고 민간 차원에서 진지하게 접근하는데 신뢰를 보내고 있는 거죠. 이로써 통일IT포럼이 민간 교류의 모범이 됐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은 특히 통일IT포럼이 남한내에 대북 IT교류에 대한 필요성과 관심을 불어넣어 준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포럼 창립 1주년을 맞아 이제 ‘한 단계 높은’ 남북 IT교류 협력을 향해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친다.
“앞으로 통일IT포럼에 북측 IT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이게 여의치 않다면 특정사안이 있을 때 북측 IT전문가들이 서면으로라도 의견을 개진해 남북 IT교류를 촉진시킬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작정이에요. 아울러 일본·미국 등에 있는 동포들도 포럼에 참여시킬 생각입니다.”
국내 학자 중 남북IT교류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박 회장이 남북 IT교류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11년전 중국에서 북한 과학자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중국에서 열린 국제 물리학 워크숍에 참가했던 북한 학자들을 만나 컴퓨터에 대해 물어봤더니 남한보다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죠. 이 정도로 남북 격차가 심하면 통일이 되어도 문제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북간 정보 격차를 줄이는데 일조를 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남북IT교류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그 시절에 그는 남북 학자들이 참여하는 컴퓨터 학술모임을 구상하게 됐고, 각고의 노력끝에 마침내 94년에 중국에서 제1회 코리안 컴퓨터처리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지난 2월 열린 5차 대회까지 지속해서 열리고 있다. 그가 씨앗을 뿌린데 따른 결실이었다.
박 회장은 남북 IT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아직도 여러가지 풀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한다. “남북의 IT분야 협력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남북의 균형 있는 IT분야 발전이 급선무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바세나르 협약 등으로 인한 대북 물자 반출 제한이 완화돼야 합니다. 또 윈도의 국가식별 코드 문데도 연구대상이죠.”
그동안 모두 네차례의 방북경험을 갖고 있는 박 회장은 남북IT협력 사업의 발전을 위한 해법도 제시한다.
“현단계에서 남북 IT협력 사업을 위해 우선 기업들은 서로 신뢰에 바탕을 둬야 합니다. 실현 가능한 것만 약속하고 과장된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협력사업의 결실을 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조급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셋째 처음부터 금전적 이윤을 얻겠다는 것보다는
투자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남북이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마련해야 하는 거죠.”
박 회장이 북한에 하고픈 얘기는 뭘까. “인터넷을 빨리 들여 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남북간에 굳이 어렵게 만날 필요없이 수시로 화상으로 연락하며 교류를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방화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는 것을 보면 북측에도 곧 인터넷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의 남북IT교류에 대한 학자적 기질과 열의는 대단하다. 평양에 들어가서는 북의 IT 현주소를 알기 위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노력한다. 평양에서 나올 때도 주머니 돈을 아끼지 않고 북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나 IT관련 도서들을 한 보따리씩 챙겨 나온다. 그는 이것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며 북한의 IT에 대해 허상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준다.
특히 지난 7월말 평양을 방문했을때는 제자인 김남규 포항공대 연구원(박사과정)을 데리고 갔다. 지난 5월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포항공대가 평양정보쎈터와 가상현실을 비롯한 정보기술·과학분야에서 공동연구를 수행키로 한데 따른 후속조치로서 김 연구원에게 직접 실무 작업을 맡기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남북 IT교류분야 후계자를 양성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는 약속을 참 중요시한다. 포항공과대 대학원장직을 맡은 후로는 더욱 바빠졌지만, 강의를 빠트리는 일은 거의 없다. 부득이 한 일로 강의를 못하게 되면 항상 보강 시간을 만들어 반드시 수업을 한다. 강의가 교수와 학생간의 약속이라 할 때, 그는 학생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학자다.
순박하면서도 호탕한 편인 그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강의시간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포항공대에서 박 원장은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항상 쉬운 영어 단어들로 잘 풀어서 강의한다. 복도에서도 들리는 그의 조금 큰 목소리는 포항공대 학생이라면 멀리서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열의가 배어있다.
“2005년이면 포항공대에서 은퇴를 하게 되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의 대학에 가서 1년쯤 강의를 하는 것도 희망하고 있어요.”
학자이자 대북IT전문가로서 길을 걸어온 박찬모회장의 소박한 꿈 가운데 하나는 남북IT교류가 풍성한 결실을 맺어 가는 거다.
△35년 충남 천안 출생 △58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69년 미국 메릴랜드대 공학 석·박사 △64∼69년 메릴랜드대 컴퓨터사이언스센터 연구원 △69∼72년 메릴랜드대 전산학과 조교수 △73∼76년 한국과학기술원 전자계산학과 부교수 △76∼79년 미국 국립 생의학연구재단 수석연구원 △79∼82년 미국 아메리카가톨릭대 전산학과 부교수 △84∼85년 재미 한국과학기술자협회 회장 △82∼89년 미국 아메리카가톨릭대 전산학과 교수 △88∼90년 재미 한인 정보과학기술자협회 회장(현재 고문) △91∼92년 한국시뮬레이션학회 회장(현재 고문) △93년 한국정보과학회 회장 △96∼97년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회장 △2000년 9월∼ 통일IT포럼 회장 △현재 포항공과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겸 포항공대 대학원 원장,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종신회원, 국제컴퓨터시뮬레이션학회 아태지역 위원장, 중국 심양 동북대·연변과기대 겸직교수, 심양 발해대 객원교수, 중국 교육부 초빙 컴퓨터 전문가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미국 아메리카가톨릭대 최우수교수상 수상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