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이전투구` 양상

 최악의 불황에 휩싸인 반도체업체들이 생존경쟁에 들어가면서 업체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툭하면 특허소송을 벌이는가 하면 통상압력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회복 시기는 갈수록 늦어질 전망이어서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사활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잦은 송사=램버스의 패소판정 이후 수그러들 것 같던 반도체업체간 특허소송이 이달 들어 다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인텔이 대만 비아테크놀로지를 상대로 칩세트 특허소송을 제기했으며, 모사이드는 삼성전자를 D램 특허권 침해로 제소했다.

 두 미국 업체의 소송은 지난 6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내놓은 반도체 특허소송 억제방침을 무색케 한다.

 특히 인텔과 비아의 특허분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비아가 인텔의 펜티엄4 칩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맞고소한 가운데 인텔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미국 외에 독일·영국·홍콩 등지로 법정싸움을 확대했다.

 두 회사는 1년 전에도 특허분쟁을 벌였다가 화해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분쟁은 서로 주력제품의 특허를 문제삼아 자존심까지 건드린 상태여서 화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송건수보다 그 과정과 내용을 보면 앞으로의 특허분쟁이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업체들은 예전에는 여러번 로열티 협상을 벌이다가 안될 경우 특허소송을 냈으나 최근엔 한두번만의 접촉 후에 곧바로 소송을 제기한다. 아예 ‘선전포고’도 없는 경우도 있다.

 또 한번 소송을 제기하면 여러 업체를 한꺼번에 걸고 넘어지거나 자국 외의 지역에서도 재판을 진행시킨다. 특허권도 무너기로 행사하려 한다.

 램버스의 경우 독일 인피니온에 무려 57건의 특허 침해소송을 냈다가 54건이 기각되는 창피를 당했다.

 ◇거세지는 통상압력=한동안 주춤했던 통상압력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미 마이크론은 한국과 대만 D램업체를 겨냥해 반덤핑제소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독일 인피니온도 유럽연합(EU)집행부를 통해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단 지원에 대해 제재를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통상압력은 특허 소송에 비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효과도 낮다.

 또 무역환경도 달라져 반덤핑제소와 같은 압력은 최근 실패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지난해 대만업체를 대상으로 한 반덤핑소송에서 패소했다.

 그렇지만 통상압력은 한국, 대만과 같이 정부 정책 의존도가 높은 나라를 대상으로 할 경우 해당 업체에 대한 후방 지원을 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다.

 ◇경쟁사 깎아내리기=CPU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인텔과 AMD는 최근 상대방을 깎아내리려 애를 쓴다. AMD는 인텔이 클록스피드를 실제 성능에 미치는 영향에 비해 과장함으로써 소비자들을 현혹시켰다고 주장했으며 인텔도 AMD야말로 소비자를 오도한다고 받아쳤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사라져야 할 기업’이라는 마이크론의 비난에 대해 ‘기술력이나 재무구조에서도 자사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기업’이라고 맞받아쳤다.

 또 D램업체들은 감산에 나서지 않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 일부 상위업체에 대해 “제 살 길만 찾는다”면서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이밖에 반도체업체들은 경쟁사가 하나 새로 개발한 제품을 발표하면 영업조직을 통해 ‘한물간 기술’ ‘실용성 없는 기술’ 등으로 몰아붙이기 일쑤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반도체업체들의 첨예한 갈등에 대해 “시장 상황 악화에 따라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라면서도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며 향후 시황이 호전될 때 필요한 협력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반도체업체들이 경쟁사를 거꾸러뜨리기 위한 싸움만 일삼을 게 아니라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공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