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개발회사의 폐쇄정책이 국내 기업 정보화를 가로막고 있다.’
‘시스템 통합’이 세계적인 정보기술(IT)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SW 개발회사의 지나친 폐쇄정책이 암초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보통 SAP·오라클·마이크로소프트·IBM(로터스) 등 외국계 SW회사들은 다른 업체들의 프로그램이 자사 애플리케이션에 연동되도록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를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API는 ‘우리 시스템과 인터페이스를 하려면 이렇게 개발하라’는 일종의 표준방법론이다. SW기업들은 이들 회사에서 내놓은 API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면 시스템 연동과 관련한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현실은 외국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철저한 폐쇄정책을 일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API를 공개하는 조건으로 최대 1억원을 요구하는 사례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 회사인 A사는 모 정부 공공기관의 EDMS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자결재 자료를 수집·저장·분류·검색하는 것으로 그룹웨어(전자결재시스템)와 연동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해 보였던 프로젝트가 그룹웨어 회사에서 API 제공을 꺼리면서 상황이 변했다. 결국 A사는 3개월이면 끝나는 작업을 그룹웨어 회사의 비협조로 6개월이 지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그룹웨어와 EDMS를 연동하기 위해 일일이 코딩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식관리시스템(KMS) 회사인 B사도 마찬가지로 곤욕을 치렀다. B사는 그룹웨어 회사에 2000만원을 주고서야 API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어렵게 수주한 프로젝트를 놓치는 것은 물론 회사 신뢰도가 떨어져 다른 프로젝트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었다.
SW업계가 폐쇄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API는 그 회사의 기술력이나 프로그램 아키텍처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돼 장기적으로는 소스코드 유출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시스템을 먼저 공급한 회사로서 차기 프로젝트에 대한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폐쇄정책을 고수하는 경우도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IT산업을 보면 그룹웨어나 전사적자원관리(ERP)를 전문으로 하던 회사들도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EDMS, KMS 또는 BI, 고객관계관리(CRM)로 확대하는 추세”라며 “이들 회사가 기득권을 갖고 프로젝트를 계속 수주하기 위해서는 API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발 더 나아가 업계는 “특히 시스템 연동에 대한 요구가 커질수록 기존 시스템에 정통한 회사에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EDMS나 KMS, CRM 전문의 후발주자들은 공정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결국 SW업계의 이기심이 국내 SW업계의 공생적인 발전은 물론 국내 기업 정보화에도 장애물이 되고 있다. 특히 시스템 연동의 중요성은 날로 증가하는 데 비해 API를 제공하는 것은 강제조항이 아닌 만큼, SW업계의 자성이 뒷받침돼야만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높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