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드 니버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평화는 힘에 의해 획득되기 때문에 항상 불안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 힘을 가진 계급들이 한 나라를 조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를 조직하는 것도 바로 힘을 가진 나라들이다. 어느 경우이건 간에 평화는 정의롭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잠정적일 뿐이다. 평화는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조정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달성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서로의 권리들에 대한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조정에 의해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평화는 스스로 너무 약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도저히 강대국에 도전할 수 없다고 느끼는 나라들이 앞으로 강대국에 도전할 만큼 강해졌다고 느끼게 되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메모: ‘테러리즘과의 전쟁’이 국제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정치·경제·군사·종교 전반에 걸쳐 새로운 금 긋기가 이뤄지면서 불명확했던 관계국들에 관계의 명확성을 요구하고 있다. 적이냐, 아군이냐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회색지대를 밀쳐내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지도의 밑그림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긴장과 불안, 그리고 새로운 질서에의 기대. 이러한 것들이 교차하면서 우리의 주의를 빼앗아가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드러나는 밑그림이 최종적 힘의 역학관계를 가시화할 것인지, 아니면 그 위에 다시금 새로운 밑그림이 그려질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불안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리라. 그러기에 표면상의 평화는 아마도 두 세력간 수면하의 치열한 영역확대 싸움이 결론에 다다를 때, 힘의 역학관계가 분명해질 때 찾아올 것이다. 평화는 힘에 의해 획득되므로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리에 의해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나 단순히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정말 이 세상이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움직여진다면,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이성(理性)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적어도 이성을 지니고 도덕을 안다는 인간들의 집단이 힘의 논리와 이해관계에 얽혀 비이성적인 판단, 비도덕적인 행위에 끌려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21세기의 첫 전쟁을 통해 사물의 이치, 도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되찾게 되길, 우리의 손으로도 좀더 공고하게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길 기대해본다.
<양혜경기자 hk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