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IT교류 현장을 가다](6)제3국 활용 방안

 한국언론재단 지원 특별기획- 남북 IT교류 현장을 가다(6)

 <글 싣는 순서>

제2부

6.완충지대를 이용한 남북 IT교류(1)-제3국 활용 방안

7.완충지대를 이용한 남북 IT교류(2)-비무장지대 활용 방안

8.북한 정보의 수집과 유통 방안

9.남북IT교류위원회(가칭)의 구성 방안

10.한단계 높은 남북 IT교류를 위하여

최근 도쿄에서 개최된 ‘월드PC 엑스포 2001’의 한 부스에서는 북한의 조선과학원·김일성종합대학·김책공대·조선콤퓨터쎈터·평양정보센터·평성이과대학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협력 관계에 있는 총련계 소프트웨어기업 디지코소프트의 전시회 참가를 돕기 위해 초청된 인사들이었다. 북한 측이 비록 우회로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국제 전시회에 단순 참관이 아니라 전시업체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전시회의 들뜬 분위기에 다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던 조선과학원 수학연구소 최성국 실장은 “북한의 연구소가 기초기술 개발에 치중해왔으나 상용화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못했다”며 “시장을 아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해 이번 전시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현실적인 남북 IT협력 모델로 남과 북이 아닌 제3국이나 휴전선 비무장지대와 같은 완충지대를 이용한 협력 방안이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순간이었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리상춘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 컴퓨터전문위원회 위원장은 “남북간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한국-조선-일본을 연계한 3국 IT교류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기업과 대학·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과 더불어 북한 IT벤처 육성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까지도 남북경협의 최선책으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밸리 등 북한 지역에 국내 업체가 직접 진출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직접투자가 활성화될 경우 남북경협, 나아가서는 남북 화해를 앞당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남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PC와 같은 전략물자의 북한 내 반입 금지(바세나르협정) 규정, 북한 내 전력 사정, 투자보전협정이나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제도적 장치가 있어 더딘 진행을 보이는 실정이다. 특히 남한기업의 대북 직접진출은 남과 북의 정치적인 협상이 필요하나 최근의 남북 관계를 감안하면 현실감은 물론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반면 중국 단둥의 하나프로그람센터, 일본의 유니코텍, 디지코소프트 등 제3국을 통한 남북 IT협력사업이나 재외국민과 북한·한국 등 3자의 협력사업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본 궤도에 오르고 있다. 제3국에서 남북 IT협력사업은 남과 북 모두 정치적인 영향을 적게 받는 데다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이를 거점으로 그곳에 뿌리내린 내부 한민족 네트워크를 활용할 경우 남북 모두 비교적 거부감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총련계 소프트웨어업체인 조선은행시스템(CGS)이 국내 모니터업체인 아이엠알아이와 합작으로 지난해 8월 일본에 설립된 유니코텍은 이런 이점을 십분 살리고 있다. 유니코텍의 자본금은 총련과 국내 기업이 마련했지만 제품 개발은 대부분 북한에서 맡고 있다. 특히 북한의 다국어 언어처리 원천기술을 활용해 공동개발한 ‘스라스라’ 시리즈 등은 일본에서 소프트뱅크·T존 등 대형 PC유통점을 통해 월판매액이 6000만엔에 이르고 있다.

 량영부 유니코텍 사장은 “일본 시장은 상당히 폐쇄적이기 때문에 북한이나 한국 기업들이 직접 진출하면 낭패보기 십상”이라며 “일본에 뿌리를 내린 재일한국기업과 한국·북한 등 3자가 협력하면 일본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코소프트도 마찬가지다. 디지코소프트의 자본금은 전부 총련계가 냈지만 개발은 거의 북한이 담당한다. 디지코소프트는 북한의 6개 기관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수입, 일본 시장에 맞게 현지화해 판매하며 판매수익의 일부를 북한에 지불한다. 디지코소프트는 북한이 개발한 일한·한일 번역 프로그램과 음성인식시스템 등을 일본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단둥에 설립된 하나프로그람센터는 남과 북이 직접 투자해 설립된 최초의 남북 IT합작회사라는 점에서 앞의 사례와는 또 다른 협력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남측은 자본과 경영을, 북측은 기술인력을 제공해 수익을 배분하는 이번 IT합작사업은 합작의향서를 교환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실질적인 업무를 개시해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개발부문과 북한 내 IT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센터로 나뉜 하나프로그람센터는 개발부문이 이미 라우터 프로토콜 개발에 착수한 데 이어 이달 중으로 2건의 용역개발 계획을 체결키로 하는 등 순항을 예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때로는 우회하는 것이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며 “북한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되는 만큼 중국·일본·러시아 등 제3국을 통한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용어설명>

 완충지대=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현실을 감안할 때 ‘완충지대’란 휴전선 비무장지대(DMZ)라는 물리적 공간을 뜻한다고 볼 수 있으나 보다 넓게는 남북한 인사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중국과 일본 등 제3국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들어 한국 기업들의 북한 직접진출이나 투자가 여러 제약으로 한계에 부딪히면서 완충지대를 활용한 우회협력 방안들이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이 같은 우회협력은 단순히 완충지대에 거점을 확보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남북한 또는 제3국이 직접 참여하는 합작법인이나 사업체를 두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인터뷰1=리상춘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 컴퓨터전문위원회 위원장>

리상춘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 컴퓨터전문위원회 위원장은 재일교포로서 북한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통일IT포럼 창립 1주년 기념세미나에서 ‘한국-조선-일본을 연계한 3국 IT교류협력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한국-조선-일본을 연계한 3국 IT교류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우선 남북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IT산업 발전을 위해, 그리고 교류 과정에서 사회제도적인 차이로 생길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3국이 연계함으로써 풀거나 완화할 수 있다. 남북간 연계를 튼튼히 하는 데도 필요하다.

 ―일본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총련 산하 동포들의 조선과의 사업 경험은 남북 IT교류 촉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유기적으로 결합된 IT산업의 발전은 서로에게 큰 이득이 있다. 한국은 단기적으로는 IT산업의 우수한 생산기지를 가질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얻을 수 있다.

 ―남북간 IT교류협력을 위한 일본 동포들의 역할은.

 ▲한마디로 남북의 인터페이스다. IT경협중계사업(컨설팅), 시장 공동개발 등이 가능하며 그런 사업을 통해 구체적인 인터페이스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 3국 IT교류협력을 위해 필요한 조치와 과제는.

 ▲IT 분야의 지식인·기업가·기술자가 망라되는 민간 차원의 협의체가 남북에 필요하다. 협의체를 통해 IT교류협력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점들을 찾아내고 그 문제들을 풀기 위한 기구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개별적인 문제해결 방도보다 어떤 문제점이라도 내놓고 기탄없이 협의할 수 있는 기구가 우선 필요하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인터뷰2=이상산 하나프로그람센터 대표>

 이상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센터장이 남북한 첫 IT합작사인 ‘하나프로그람센터’의 대표를 맡은 것은 지난 8월이다. 그를 만나 제3국에서의 남북 IT교류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알아봤다.

 ―남북 IT합작사가 중국 단둥에 자리잡게 된 배경은.

 ▲수요자들의 수시 방문이 가능한 지역이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또한 북측 인력이 수시로 충원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중국 지역과 비교해서는 사업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단둥의 장점이다.

 ―남북 IT교류협력에서 중국의 지리적 이점은.

 ▲중국은 현재 경제 개방 및 발전 단계에 있어서 남과 북의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과 남이 직접 한반도의 어느 지역에서 협력하는 것보다 중국을 활용하는 게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거대시장 중국을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는 의미도 있다.

 ―합작사 현황과 운영 계획은.

 ▲하나프로그람센터 개발부문은 인력파견용역, 용역사업수행, 외부사업수주, 자체제품개발의 네 가지 형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수행할 계획이다. 현재 남측의 몇몇 업체와 소프트웨어 개발용역을 수행하고 있으며 일본 개발센터 설치에 대한 협의도 진행 중이다.

 ―하나프로그람센터가 장차 신의주에 진출해 단둥-신의주 소프트웨어 멀티미디어 밸리 조성의 선발대가 되는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남북 합의에 따라 신의주에 사업체의 일부를 두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센터 개발인력 100여명까지는 단둥에서 사업을 수행하되 규모가 확대되면 단순 프로그래밍 인력은 상대적으로 사업비용이 저렴한 신의주에 상주하고, 핵심인력들을 중심으로 단둥에 상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특별기획취재팀>

팀장:서현진 부장(인터넷부)

정동수기자(사진부)

온기홍기자(기획조사부)

유형준기자(IT산업부)

홍기범기자(증권금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