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세상 화제와 이슈](17)한컴과 MS의 워드프로세서 전쟁

 워드프로세서 전쟁이 뜨거워진다.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토종 워드프로세서의 자존심인 한글과컴퓨터(한컴)가 영업 및 마케팅 전략을 정비하며 전운이 감돌더니 급기야 한컴의 신제품 출시를 도화선으로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다시 시작됐다.

 ◇왜 워드프로세서 전쟁인가=MS와 한컴이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맞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패키지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워드프로세서가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워드프로세서는 컴퓨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다.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는 청소년 계층에 집중돼 있으며, 웹 브라우저나 전자우편 프로그램의 사용률이 높다 해도 인터넷 사용자 수 이상을 넘을 수 없다. 반면 워드프로세서는 누구나 사용한다.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차지한다는 것은 국내 모든 컴퓨터 사용자를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시장 규모도 크다. 업계에서는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 규모를 500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패키지 소프트웨어 시장 가운데는 단연 최고다. 여기에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하면 스프레드시트나 프레젠테이션 툴 등 다른 사무용 패키지 소프트웨어 판매를 높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이렇듯 경제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지만 두 회사가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물러나지 않는 이면에는 ‘자존심’과 ‘사운’이라는 이유가 숨어 있다.

 MS는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표준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한컴 때문에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도 이치타로를 만든 저스트시스템이 있었지만 MS의 공격에 무릎을 꿇은 지 오래다. MS 입장에서는 한컴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지난 98년 한컴을 인수하려 했지만 국민적 반대로 무산된 적도 있다.

 한컴은 워드프로세서가 회사의 운명과 직결된다. 전체 매출 가운데 워드프로세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인터넷 관련 자회사가 여럿 있지만 실질적인 매출은 거의 나오지 않을뿐 아니라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만일 한컴이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MS에 밀린다면 이는 회사 전체의 수익구조 악화로 직결된다.

 ◇누가 앞서가나=이런 이유로 두 회사는 서로 자사 제품의 사용률이 높다고 주장한다. 다만 절대적인 점유율에는 개의치 않는다. 아래아한글과 워드를 함께 설치해 놓은 사용자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회사는 ‘주로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가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컴은 2개월 주기로 설문조사를 할 만큼 민감하다. 한컴은 지난 8월 한국리서치를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자주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 가운데 아래아한글이 71%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워드는 18%에 불과하고 나머지 11%는 기타다. 기타에는 MS의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로 워드프로세서를 대신한다는 사용자가 포함돼 있다.

 반면 MS 측이 밝히는 결과는 자못 다르다. MS는 주로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 가운데 아래아한글이 52%이고 워드가 43%라고 밝혔다. 기타는 5%다. MS는 이 결과보다 직원 500인 이상 기업의 사용자 비중을 강조한다. MS는 98년 말을 기점으로 점유율이 역전돼 기업 사용자의 67%가 워드를 사용하고 아래아한글 사용자는 29%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결국 아래아한글은 전체 사용자, 특히 공공기관과 가정 및 학교 시장에서 앞서고 있고 워드는 대기업에서 앞선다는 말이다. 양사의 관계자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한컴의 곽노섭 이사는 “워드 사용자가 최근 2∼3년 동안 늘었다는 것은 인정

하지만 전체적인 점유율에서는 아직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며 “기업 시장을 어떻게 공략하는지가 향후 아래아한글 전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MS의 유재성 이사는 “이미 주요 기업은 워드를 사용하고 있으며 공공시장과 학생층으로 사용자층을 넓히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상대방의 약한 고리를 공략한다=아래아한글과 워드의 점유율에서 두 회사의 전략은 출발한다. 한컴은 공공기관과 학교 시장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면서 기업 시장으로 진출한다는 전략이고, MS는 이와 반대다.

 MS는 워드2002의 가장 큰 장점을 통합성이라고 강조한다. 사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98%를 차지하고 있는 오피스 제품과 데이터가 완벽하게 호환되기 때문에 지식 자원의 공유와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기업 시장에서 워드의 입지를 강하게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단순한 맞춤법 검사가 아닌 문법 검사까지 가능해 한국적 환경에 어울린다는 점도 전면에 내세운다.

 여기에 MS는 최근 어린이용 워드를 출시했다. MS는 학생층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처음 사용한 제품을 계속 사용한다는 워드프로세서의 특성상 장기적인 포석을 놓는 것이다. 한컴은 지난 9일 아래아한글2002를 발표하면서 호환성 강화를 강조했다. 이는 MS의 통합성에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등 MS의 다른 사무용 소프트웨어와 함께 아래아한글을 사용해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스프레드시트와 프리젠테이션 기능을 아래아한글에 추가해 아래아한글 하나로 기본적인 사무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가격 면에서 아래아한글2002(8만8000원)가 워드2002(13만원)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오피스 구입이 부담스러운 중소 규모 이하의 기업을 대상으로 중점적인 영업을 펼칠 계획이다.

 특히 한컴은 아래아한글2002에 9개의 사전을 비롯해 505개의 글꼴, 1600여개에 이르는 클립아트를 포함시켜 가장 한국적인 문서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한컴과 MS의 경쟁은 워드프로세서에서 불거졌지만 곧 전반적인 사무용 소프트웨어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컴은 아래아한글의 우위를 살려 오피스 제품인 한컴오피스V 영업을 활발히 펼칠 계획이며, MS는 오피스XP와 윈도XP의 바람을 타고 워드의 입지를 강화할 방침이다.

 두 회사 모두 1년여 후에는 워드프로세서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때 양사는 다시 한 번 전면전을 벌일 것이다. 그때까지 국내 사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패권을 둘러싼 한컴과 MS의 워드프로세서 전쟁은 이어질 것이다.

 

 <인터뷰>

 마이크로소프트 유재성 이사

 

 ―주요 공략 대상은 어디인가.

 ▲공공기관과 학교다. 이미 외교부와 특허청에는 워드가 공급됐다. 외교부는 외국과 문서 교류를 할 때 워드가 필요하기 때문이고, 특허청도 변리사들의 요구에 따라 워드를 도입했다. 이처럼 공공기관에서도 워드의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공공기관에 제출되는 문서를 아래아한글로 제한하는 것은 대국민 서비스를 높인다는 정부의 방향과 맞지 않다고 본다.

 학교 시장에서는 우선 어린이용 워드로 초등학생에게 보급하는 것이 관건이다. 교사를 대상으로 워드를 활용해 멀티미디어 자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기업 시장 방어 전략은.

 ▲기업의 오피스 사용률은 98%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워드를 비롯한 오피스 제품을 이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갓이다. 오피스XP 출시 후 이미 40개 기업에서 이런 세미나를 실시했다.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기업 고객은 315개다. 내년 6월까지 이 315개 기업 전부 세미나를 실시할 방침이다.

 ―아래아한글에 비해 워드의 상대적 장점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오피스 프로그램과의 통합이다. 이미 문서만 만드는 시대는 지나고 사무용 프로그램 사이의 데이터 호환과 자원 공유가 필요하다. 둘째로 데이터베이스와의 연동이 좋아 개발자에게 유리한 작업 환경을 제공한다. 셋째는 인간공학적 메뉴의 배열이나 음성인식 기능 등 기초적인 기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한글 문법 검사도 좋은 기능이다.

 ―향후 가격 정책은.

 ▲적당한 비용을 지불한 고객은 워드를 제대로 사용한다. 본사와의 협의가 되는 한도에서 가격은 최대한 저렴하게 책정하고 있다. 사실 국내 워드 가격은 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가격을 내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양한 가격 제도를 운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인 사용자와 기업 사용자가 다르고 패키지 구매와 라이선스 계약이 다르다. 과거 개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연간사용계약을 맺는 방법도 고려 중이다. 앞으로 소프트웨어는 사용권의 구매가 아닌 사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변할 것이다.

 

 한컴 곽노섭 이사 인터뷰

 

 ―공공시장 방어 전략은.

 ▲워드가 몇몇 공공기관에 도입된다고 하지만 아직 제품 구매가 아닌 뷰어 수준으로 알고 있다. 공공기관에서는 기존 문서자원이 매우 중요하다. 워드에 대한 아래아한글의 파일 호환성에 비해 아래아한글에 대한 워드의 호환성이 낮다. 즉 기존 아래아한글 파일을 워드로 불러들여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미 애국심에 호소하는 시대는 지났다. 품질로 경쟁해도 공공시장을 지켜낼 자신이 있다.

 ―기업 시장 공략의 해법은.

 ▲아래아한글은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나다. 오피스를 사는 데 부담이 되는 중소 규모 이하의 기업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이다. 특히 기업 고객에게는 상당히 탄력적인 가격정책을 펼칠 것이다. 패키지 판매나 라이선스 계약을 가리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가격제도를 운영할 방침이다. 대기업 시장은 묘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워드에 대한 상대적 우위는.

 ▲역시 사용자 친숙함이다. 워드프로세서의 기능 경쟁은 거의 한계에 왔다고 본다. 문제는 얼마나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적 특성을 제대로 살린 것도 그 일환이다. 같은 클립아트라도 우리는 보다 한국적 사무환경에 필요한 이미지를 많이 넣었다.

 워디안부터는 MS 오피스와 호환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아래아한글2002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본적인 오피스 기능을 포함시켰다. 간이 스프레드시트나 프레젠테이션 툴로 손색이 없다고 자신한다.

 ―향후 제품 개발 계획은.

 ▲가능한 한 매년 10월 9일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1년 남았다. 아래아한글을 포함한 오피스 제품도 내년 10월쯤 출시할 예정이다. 개발 방향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음성인식 기능이 추가될 것이다. 차기 버전에서는 100%라고 할 수 있도록 MS 제품과의 호환성도 강화할 방침이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