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생산설비 국내 재인수 논란

 하이닉스반도체가 잉여 생산설비(FAB)를 중국·대만 컨소시엄에 매각하려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소 반도체설계업체들의 전용 팹 건립 움직임이 급류를 타고 있다.

 중소 반도체설계업체들의 모임인 ASIC설계사협회(회장 정자춘·ADA)는 하이닉스 구미공장을 인수해 회원사들의 전용 팹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중이며 이미 자금확보와 여론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했다고 10일 밝혔다.

 정자춘 협회장은 “하이닉스가 생산설비와 기술을 중국에 넘기는 것은 이제 막 자리를 잡으려는 중소 반도체 벤처들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키는 행위”라며 “이같은 위기의식에 동참하는 회원들과 전용 팹 확보 방안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원사들과 자금확보 방안을 놓고 협의중이며 하이닉스와도 이 사안을 놓고 다시 물밑접촉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전용 팹 확보의 타당성과 방안을 구체화한 사업계획서를 재경부 등에 제출, 여론조성과 정부지원을 얻어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 중소 반도체설계업체 사장도 “하이닉스가 기술유출이 우려되는 중국보다는 국내 중소업체들에 생산라인을 넘기고 기술을 지원한다면 고객확보 차원에서나 장기적인 국익 관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도체산업 주무부처인 산자부와 정통부는 여전히 자금조달의 어려움과 통상압력의 우려를 들어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 반응=산자부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생산라인을 매각하는 것은 채권단에서 자구책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어서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며 “중소업체들이 전용 팹을 건립하겠다는 의도는 좋으나 지원은 어렵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아무리 중소업체 지원이라고 할지라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하이닉스의 구조조정에 개입한다면 마이크론 등 외국 경쟁업체들에 빌미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이 사안을 검토한 바 있는 정통부도 중소 업체들의 자금조달 능력이 의심스러운데다 정부가 나서 자금을 지원한다면 결국 하이닉스의 문제에 끼어드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정통부는 설계나 기술개발 등 전단계 지원은 가능하나 양산설비 확충은 산자부의 역할이라는 입장이다.

 ◇중소업체 입장=하이닉스가 생산설비와 핵심기술을 중국에 넘긴다면 결국 중소업체들은 안정적인 생산인프라도 갖추지 못한 채 중국에 뒤처지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아무리 하이닉스가 자금유치를 위한 압력수단으로 중국 매각을 발표했을지라도 사안이 시급한 만큼 정부는 그동안 늦춰오던 전용 팹 분야에 대한 지원을 재고해달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산자부·정통부가 통상압력과 역할분담 운운하며 뒤로 발뺌하는 것은 주무부처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행동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망=현재로서는 중소 반도체설계업체들이 일단 여론조성을 등에 업어 정부를 견인해 내는 것과 종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하이닉스도 중소업체들의 적극적인 제안을 내심 반기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론조성과 자금 등이 어느 정도 확보만 된다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정부가 통상압력의 우려를 피하고 국내 반도체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어떻게 그려나갈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