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증가하는 고령인구 다시 그리는 경제지도

 ◆증가하는 고령인구 다시 그리는 경제지도

 Paul Wallice 지음 / 유재천 옮김 / 시유시 펴냄

 

 2001년도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지난 수년간 우리사회를 풍미하던 밀레니엄 담론도 차츰 퇴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화·세계화·다양화 등 통상적으로 거론돼온 레퍼토리들에 비해 인구학적 변화는 밀레니엄 담론에서 응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연령지진(Agequake)’이라고 직역되는 이 책에서 저자 폴 월리스는 바로 종전의 밀레니엄 담론에서 간과돼온 인구통계학적 효과를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주지시킨다.

 오늘날 인류세계는 지난 수세기간 성장의 발목을 잡아온 ‘인구과잉’과는 상반되는 새로운 인구학적 변화로 심각한 정체기에 돌입하고 있다. 출산율 감소 및 수명연장으로 인한 인구의 고령화 추세가 기존의 경제사회적 체제에 엄청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부작용이 선진국 일부에서 전진(前震)의 형태로 단편적으로 현시되고 있으나 조만간 그것은 개발도상국들에까지 확산돼 초국가적 문제로 대두할 것으로 전망된다.

 ‘빨리 들어온 것은 재빨리 사라진다’는 관성의 원리는 급만성 질환이나 기억 등과 같은 일상적 체험에 널리 통용되는 상식적 명제에 속한다고 하겠는데 고령화 파동의 충격파도 바로 그러한 일상명제에 부합되는 전형적 사례의 하나라고 판단된다. 고령화 현상은 20세기와 21세기를 분할하는 오늘날 인류사회의 최대 쟁점이요 새로운 천년기를 장식하는 심각한 도전요소의 하나임이 분명하나, 굉음을 동반치 않은 채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오는 은밀한 위험요소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령화라는 인구구성적 변화가 경제사회적 측면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로 다음 여섯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주식시장의 붕괴사태다. 60년대에 반체제 문화에 심취했던 베이비붐 세대는 90년대에 이르러 노후대비를 위한 주식문화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지난 10년간 거대한 주식 붐이 지속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증시침체는 베이붐 세대가 은퇴기에 근접하게 된 고령화 현상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둘째, 고령화는 부동산 경기에도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70·80년대에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발휘했던 베이비붐 세대는 자가주택을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에 열심히 일해 주택을 구입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의 출생률 감소로 성년인구의 비율이 급감함으로써 주택시장은 단기적 호재의 작동 여부와 관계없이 장기적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상품시장의 거대한 지각변화가 동반된다. 한마디로 금융·건강·레저 등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산업이 융성하고 햄버거·맥주·청바지·운동화 등으로 대변되는 청소년 대상의 제조업이 쇠퇴하리라 전망되는데 그같은 양상은 비아그라라는 ‘효자상품’에 대한 폭발적 인기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넷째는 ‘관리층 감축’으로 요약할 수 있는 조직체계상의 변모다. 중장년 연령층이 확대되고 출산율 급락으로 신입사원이 줄어들면서 조직의 상층부가 과잉비대화해 관리직 퇴출운동이 가속화하게 되며 이같은 추세는 경기침체기마다 증폭된다.

 다섯째는 연금의 위기다. 인구구조의 격변은 납입액과 수령액의 차이를 확대함으로써 연금제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먹고 살 자원은 궁극적으로 현직 근로자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렇듯 숫벌이 일벌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생산성 증가분은 노동참여율 하락에 의해 상쇄돼 경제성장은 답보상태에 이르게 된다.

 여섯째는 국제 경제질서의 재편이다. 인구증가가 아닌 인구감소는 세계질서의 근본적 변혁을 초래한다. 고령화 시대의 수혜국은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멕시코·터키 등과 같이 젊은 인구층의 비율이 높은 저개발국가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 하에서는 나이를 적게 먹는 거북이가 빨리 늙는 토끼를 따라잡는 국가경제 서열이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증가하는 고령인구, 다시 그리는 경제지도’는 일상현실에 관한 탁월한 분석력을 과시한 저자나 번역작업을 완수한 역자 모두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은 의미 있는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도한 인구결정론적 해석과 같은 한계를 노정하는 것은 사실이나, 노령화 현상 자체에 주력한 기존의 서적들과는 달리 그 경제사회적 영향들을 상세히 다룬 이 책을 통해 풍요사회 이면에 내재하는 ‘사회적 노령화 문제’가 우리사회에 널리 확산됐으면 한다.

 <김문조 고려대 교수 pkim82@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