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경 박사(한국여성개발원 팀장)
◇디지털 사회는 평등한 사회인가=요즘 TV를 보면, 생선가게 앞에서 생선을 사려는 남자가 집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고기를 보여주고, 신선도를 살피게 한다. 옆에서 신기하게 본 생선가게 할머니가 궁금해 하자 남자는 “디지털이에요”하는데, 그 말에 할머니는 “워, 돼지털”하고 되묻는 광고를 볼 수 있다.
산업혁명에 이어 ‘전자혁명’이라 하는 극소전자 칩의 개발, 이른바 디지털 신기술의 개발은 아날로그와 달리 어떤 언어나 기호든지 ‘0’과 ‘1’의 조합으로 부호화하여 저장함으로써 정보교환과 소통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우리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확산은 디지털이 새로운 변화, 새로운 세계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반면에 마치 ‘돼지털’과 같은 무관한 별도의 삶이 존재하게 한다.
디지털 기술이 지배적인 사회, 이른바 디지털 사회는 과연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디지털 신기술이 주는 혜택을 누구나 누리고 있는 것일까.
최근 조사자료에 따르면 지역별로 인터넷 사용자 비율은 서울·경기·부산·경남의 순서로 수도권이 높게 나타났으며, 소도시·농촌지역이 매우 취약하게 나타났다. 학력별로는 중졸 이하는 불과 1%, 고졸은 16.2%인 반면에 대졸은 52.2%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별로는 10대 51%, 20대들이 59%인 반면, 30대 29%, 40대 18.5%, 그리고 50대 이상은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별로도 화이트칼라와 학생의 경우 60% 정도로 높은 이용률을 보이는 반면, 주부와 농민의 경우는 각각 9.2%, 1.9%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는 최근 정부의 사이버코리아21과 같은 적극적인 정책에 힘입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최근 인터넷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지만, 기술에 대한 접근기회·이용·활용 등에 있어서 계층간·소득·지역·성별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디지털 기술은 손바닥만한 휴대폰으로 시장에서 생선의 신선도를 보여주고 멀리 있는 부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지만, 반면에는 그와 같은 디지털 기술의 엄청난 혜택을 돼지털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사회의 현실이며, 바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정보격차의 문제다.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란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과 이용·활용이 계층별, 성별, 소득별로 불균형하게 나타나는 정보격차 현상”을 말하는데, 97년 PBS에서 TV 시리즈 ‘디지털 격차’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었을 때만 해도 이 용어는 매우 낯설었다. 그러나 불과 몇년 뒤인 오늘날 가장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디지털 격차를 둘러싼 현상들이 모든 영역에서 계속적으로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며, 디지털의 격차는 단순히 기술에 대한 접근기회나 이용과 활용에 있어서의 차이가 아니라 그러한 기회의 불균등이나 차이가 새로운 사회의 사회불평등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디지털을 기반으로 신기술이 발달하면 이러한 기술을 둘러싸고 누가 접근할 수 있고, 누가 이용할 수 있고 그리고 무엇을 위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현 사회에서의 경제적·사회적 배경과 학력, 지식 정도와 같은 문화자본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정보에 접근하여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허버트 실러는 이를 ‘정보부자(information rich)’와 ‘정보빈자(information poor)’로 구분하였는데, 오늘날과 같은 지식정보사회에서 정보부자와 빈자는 곧 사회적인 부의 분포, 재분배구조와 직결된다.
또한 정보가 생산적인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면서 점차 정보이용과 지식활용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정보이용과 활용은 바로 현재의 사회불평등구조를 지속하거나 강화한다. 그러므로 디지털 사회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접근과 이용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위계와 계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여성의 현실은 어떠한가=21세기는 여성에게 디지털 기술이 확산되면 기술테크노피아의 이념이 실현되는 ‘디지털 세상’이 실현될 것처럼, 희망적인 전망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희망적인 전망을 하는 근거는 한국사회가 디지털 사회로 진입하면서 여성이 산업사회에 비해 보다 월등하게 활동할 수 있는데, 산업사회에서는 육체노동이 주요한 생산노동이었던 반면에 디지털 사회, 정보사회에서 지식노동, 정보노동이 주요한 생산노동이기 때문에 여성의 신체적인 결함이 문제시 되지 않고, 정보노동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면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에 우세한 조건으로 진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개선할 것이라는 인식에 있다.
여성이 지닌 특성이 정보노동에 더 부합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또한 선진국가일수록, 정보사회일수록 여성의 경제활동의 참여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사회가 국가경쟁력을 갖고, 부를 창출하는 데 여성의 노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필수적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조사한 여성의 정보격차 실태를 보면 수도권 기혼여성 918명 가운데 집에 컴퓨터를 보유한 사람은 806명으로 정보접근수단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이용하는 사람은 444명이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우리나라 정보화가 크게 확산되면서 가구당 정보접근 정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이용률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며, 또한 가정에서 주 이용자가 남편이나 자녀여서 더 취약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행하게도 정보화,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과 이용·활용면에서 여성의 현실은 매우 취약하다. 최근 여성정보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그간 정부의 노력과 지원으로 여성의 정보화 현실이 많이 나아지고 있으나 실제 환경은 더욱 취약하다.
◇디지털 사회통합과 여성의 미래=여성은 21세기의 주역이며, 21세기 사회에서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디지털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은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어떻게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여 보다 잘 이용하고 활용하는가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질과 직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인식과 과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여성에게 디지털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여성의 보편적 접근권은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여성이 디지털 기술의 이용과 활용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적극 나서서야 할 것이다.
둘째는 여성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지원을 최대화해야 한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과 기술, 정보의 이용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다. 그러기에 여성도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을 위해 지식을 활용하고 유용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정보능력(information literacy)을 길러야 한다.
셋째는 여성은 소비를 통해 새로움을 생산하는 생산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21세기 디지털 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며, 이는 소비를 통한 생산, 처음과 끝의 경계,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여성 특히 주부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가족의 편안한 삶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이는 정보의 소비가 디지털기술의 활용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가공함으로써 새로운 정보의 생산을 의미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소비를 통해 삶의 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1세기 디지털 사회에서 보다 좋은 것을 생산하기 위해서 여성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과 이용 그리고 활용만이 아니라 새로운 신기술을 생산할 수 있는 보다 전문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
◇여성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21세기는 디지털시대이며, 이는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여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 하는 새로운 사회변화와 자기발전을 주도하는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제 여성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적극적인 자세로 미래사회의 변화와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아직 여성은 정보취약집단이므로 여성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제도적인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영국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는 여성을 지원하는 멘터링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고 과학친화적인, 디지털 친화적인 사고와 역량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여성에게 희망을 제시하면서 문을 열었던 21세기에 여성이 주도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 기술에 접근기회를 마련하여 기술을 적극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할 때 가능하다. 이 점을 우리는 앞으로 분명히 인식하여 서로의 노력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디지털매체의 속성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 자체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기존의 기술과 신기술과의 기술격차를 내재하고 있으므로 디지털 격차에 대한 접근은 기술에 대한 접근보다는 기술의 사회문화적인 활용이라는 점에서 격차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맥락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격차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접근은 개인에게 필요한 기술을 적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며, 이는 기술교육이 단순히 기술전수가 아니라 기술의 생성과 발전에 대한 이해를 포함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술에 대한 기술주의 사고를 벗어나 기술을 보다 사회문화적으로 이해하는 문화적 사고가 확산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술의 중심에는 기술의 개발자가 존재하지만, 기술의 이용과 활용에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앞으로 디지털 평등사회를 위해서 디지털 기술을 단순히 기술로 보기보다는 디지털 기술을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이용하는가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도록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