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11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장관들은 미 테러사태 이후 유가가 하락했음에도 감산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 7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이는 현재 OPEC의 능력으로는 유가를 회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유가를 OPEC의 목표수준인 배럴당 25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규모만큼 감산에 들어간다면 대부분의 OPEC 회원국은 파산하게 될 것이다.
OPEC의 자료에 따르면 유가는 미 테러사태 이후 24%나 폭락했으며 브렌트유는 지난 8일(현지시각) 현재 배럴당 22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OPEC 회원국은 당분간 그들이 원하는 가격인 배럴당 25달러 수준으로 회복시킬 만한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 경기침체와 석유 재고량의 증가, 그리고 비OPEC 국가의 감산 거절로 인해 앞으로 6개월내에는 배럴당 25달러로의 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다. 이러한 연결상황은 에너지 가격하락과 더 강력해진 에너지 방어정책, 그리고 OPEC 국가의 급속한 경기침체로 이어질 것이다.
에너지 가격과 관련된 모든 지수는 한결같이 하락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석유소비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공급은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OPEC은 세계 경기침체의 심화와 미국의 분노를 우려해 감산을 단념했다.
멕시코나 노르웨이같은 비OPEC 산유국은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석유를 산출할 것이다. 그러나 공급과잉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올해만도 매일 50만배럴 이상을 생산하며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래 가장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다.
러시아의 주요 프로젝트인 발트 파이프라인 시스템이 완공되면 앞으로 6개월내에 매일 25만배럴이 추가생산될 것이다. OPEC이 러시아에 감산을 유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시장점유율을 위해 가격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OPEC이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는 장기간의 가격붕괴를 일으킬 것이다.
가격하락은 석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세계에 걸친 천연가스 배급업자들은 갑작스런 유가하락을 틈타 지난 2년간 적었던 재고량을 증가시키고 있다. 지난 4월 이후로 천연가스 가격은 60%의 하락세를 보여왔으므로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음달까지 미국의 재고량이 지난해보다 20% 증가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러한 재고량은 에너지 가격의 하락을 사실상 가속시킬 것이며, 이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에너지부의 에너지정보국에 따르면 천연가스는 미국의 총에너지 중 24%를 구성하고 있다. 정보국은 최근 보고에서 주거용 난방 비용이 지난해 겨울보다 가구당 170달러에서 320달러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비축량을 최초 관련법안이 허용하고 있는 10억배럴로 늘리는 논의도 진행중이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 의하면 비축량을 그 정도로 늘리기 위해서는 현 시점에서 110억달러가 소요되고, 이것은 지난해 고유가시기의 가격과 비교하면 80억달러 정도 적은 비용이다. 이 정도의 석유비축량은 석유수입없이 미국이 3개월간 지낼 수 있는 분량이다.
이러한 상황은 OPEC으로서는 악몽과 같다. OPEC은 비OPEC 국가에 감산을 요구할 수 없다. 또 내부적으로도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인해 생산량을 줄일 수 없다. 저유가는 다른 연료에도 비슷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설사 미국의 경제 회복이 진행되더라도, 미국 외 국가의 에너지 수요가 향상되기까지는 몇달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설사 수요가 늘어난다 할지라도 증가된 재고량으로 인해 가격상승폭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몇몇 OPEC 국가로 하여금 미국이 테러지원 국가 중 하나로 OPEC 회원국 가운데 하나를 지목하기를 희망하는 상황을 낳을 수 있다. 오직 이라크나 이란과 같은 주요 생산국 가운데 하나가 세계시장에서 추방돼야만 유가가 OPEC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양승욱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