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영>경영프리즘(28)해고하지 않는 회사가 성장한다

 ‘해고하지 않는 회사가 성장한다.’

 불과 몇년전 IMF를 겪었으며 최근 또다시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경제 상황에서 본다면 이런 경구는 다소 생뚱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본의 경제 저널리스트 에이카와 고키가 일본에 맞지 않는 미국의 경영방식을 비판하며 쓴 책의 제목이다.

 “저의 부친께서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해고는 무능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단 한명의 해고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에이카와 고키는 일본 세이부 그룹 회장 즈쓰미 요시아키의 말을 인용하며, 해고를 동반한 구조조정만이 기업의 난관을 헤치는 방법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해고’니 ‘구조조정’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말들이 익숙해졌지만, 이는 불과 몇년전부터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평생직장’ ‘애사심’ ‘조직력’ ‘한가족’ 등의 말들이 대부분 기업들의 경영 이념이었다.

 IMF의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국내 기업에도 미국식 합리주의·개인주의·성과제일주의라는 미명아래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휩쓸었다.

 물론 해고를 통한 구조조정이 꼭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부실해진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더 절실한 말로 ‘살아남기 위해’, 지출을 줄이고 불필요한 인력을 해고한다는 데 누가 함부로 비난만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미국은 수백년간 쌓아온 사회보장제도와 합리주의가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같이 전업시스템이나 후생복지와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사회를 이끄는 근본 뿌리로 자리잡고 있는 사회가 아니다. 외국계 기업들이나 벤처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연봉제나 개인주의 등의 기업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에서는 온정주의와 조직문화, 가족주의 등의 문화가 가장 지배적인 기업 이념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국내에 있는 외국계 기업들도 서구의 합리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장된 경영을 펼치려고 노력은 하지만 한국인의 온정주의와 주관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일본의 세이부 그룹을 비롯해 도요타·미쓰비시 등의 기업은 인간 존중에 기초한 경영과 인재를 키우는 경영으로 해고없이도 여전히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요타는 전세계 81곳에 정식 판매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난해 12조8795억엔(약 129조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2819억엔(약 4조9000억원)의 순익을 냈다. 도요타가 이처럼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도요타 생상방식(TPS)을 비롯해 효과적인 제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일본 기업 특유의 종신고용과 가족경영이 큰 몫을 했다. 도요타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거품경제가 무너져 내린 90년대 중반 경쟁사들이 미국식 경영방식을 도입하고 앞다퉈 인원 감축에 나설 때 도요타만은 끝까지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다.

 미국의 포드나 IBM 같은 회사는 오히려 이같이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종신고용 등의 일본식 경영기법을 도입, 장기화 전략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도 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경영인과 직원을 냉정히 정리하는 미국식 실적주의가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진정 직원을 아끼고 서로를 존중하는 기업문화가 더 많은 성과를 올릴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IMF를 힘겼게 지나왔던 우리 기업에 여전히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는 엄연한 현실이다. 한 기업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주로서 눈앞에 밀려오는 암흑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당장 이 암흑만 벗어나려 한다면 다운사이징 경영이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 회사가 해고를 해야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진다면 그 전에 사원들의 양해를 얻어 감봉을 하고, 모두 하나가 돼 위기를 극복해 날갈 것입니다”라고 말한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회장이었던 아이카와 겐타로의 말도 한번 깊이 있게 고민해볼 만하다.

 한국 최고의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꼽히는 미래산업은 IMF의 한파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성장을 거듭해왔다. 여기에는 미래산업을 이끈 한국 벤처업계의 대부 정문술 전 회장의 경영 철학이 뒷받침한다. 정문술 전 사장은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이 미래산업이 한번의 정리해고 없이 어려움을 헤치고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계기라고 말한다.

 국내 어느 기업의 경영자도 ‘기업의 생명력은 인력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 기업에도 한국의 문화에 단기적인 결과주의로 직원을 과감히 정리해고하고, 거리낌없이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미국식 경영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

 또한 어느 누구라도 인간이라면 조직보다 내가 먼저고, 조직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개념을 감히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해고하는 기업주도, 경영자도, 해고당하는 직원도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인터뷰-소프트포럼 안창준 사장 

“소프트포럼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직원 채용과 직원 교육입니다.”

 안창준 소프트포럼(http://www.softforum.com) 사장은 만약 회사가 직원을 한명 한명 고심끝에 채용하고, 그 직원이 최고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교육에 큰 투자를 한다면 아마 어느 업체도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쉽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소프트포럼은 지난 95년 미래산업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분사해 독립적으로 운영되다가 99년 독립법인으로 설립됐다. 현재는 직원 100명을 넘어선 중견 벤처기업으로서 국내 최고의 공개키기반구조(PKI) 솔루션 업체로 성장했다.

 “당장 인력이 필요하다고 고민없이 채용한다면 나중에 회사가 어려울 때도 고민없이 해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와 직원도 인간관계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신뢰성 구축입니다.”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 안창준 사장은 한국에서의 경영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미국식 합리주의와 개인주의에 기반해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는 어려우며, 그렇다고 한국식 온정주의와 가족주의만으로 이 시대에 성장한 기업으로 올라서기는 더더욱 힘들다고 주장한다. 안 사장은 이 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화시키냐가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털어 놓는다.

 “하지만 현재 저의 경영모델은 초기의 휴렛패커드로 잡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경영, 이것이 제 경영의 가장 큰 핵심입니다. 물론 앞으로 규모가 커지면 그에 적합한 시스템이 강조되는 경영방식이 필요하겠지만, 직원에게 미래가치를 보여줘 스스로 최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배제될 수 없습니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