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산업은 미디어산업의 일부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지식산업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출판 시장은 정보화와 멀티미디어화가 급진전되면서 새로운 형식의 전자출판물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지난 99년과 2000년에 개최된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나 도쿄 국제도서전에 출품된 도서 가운데 50%가 전자출판물이었을 정도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자출판물이 기존 종이책을 점차 대체해가고 있다. e북은 전자출판물의 한 종류지만 전자출판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99년 이후 전문 e북서비스업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으며 이용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점차 새로운 출판 영역으로서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현재 e북서비스업체는 30여개에 이르고 있으며 전문출판사를 중심으로 새로이 시장 참여를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업체수는 갈수록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e북서비스업체들은 전문출판사들과 제휴해 다양한 콘텐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e북이 출판 분야에서 혁명을 불러일의킬 단초를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e북이 종이책에 버금가는 확고한 출판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먼저 대두되는 것은 유료화 및 수익성 문제. 종이가 아닌 컴퓨터로 보는 책에 ‘누가 돈을 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비단 e북서비스업체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들 업체들도 인터넷사업 영역의 하나라는 측면에서 수익부재론에 허덕이고 있는 닷컴기업과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 국내 e북서비스업체들이 30여개에 이르고 있으나 수익부재에 따른 구조조정의 여파가 크게 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이러다가 자칫 꽃을 피우기도 전에 고사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다음은 표준화 문제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업체와 동등한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표준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표준 마련이나 국제적인 표준을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세계 표준을 주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차선책으로 세계 표준화에 뒤지지 않는 전략 설정도 중요하다.
아직 시장이 발아단계인 만큼 콘텐츠 개발 못지않게 글로벌 표준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의 지원도 대폭 강화돼야 한다. 디지털 콘텐츠는 21세기 전략사업이며 그 가운데 e북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아야 할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이 미지근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정부에서 전자출판물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등 일부 지원책을 내놓긴 했으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악화되고 있는 e북업계의 경영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지난 상반기 기업간(B2B)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최대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된 국립중앙도서관의 ‘상업용 온라인 출판물 구입사업’은 오히려 B2B 시장을 가로막는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장을 활성화해야 할 정부가 e북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함으로써 업계에 큰 실망을 안겨줬다고 주장한다.
보안 및 저작권문제도 e북사업 발전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국내에선 아직 초기시장 단계라 현안문제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선진국에선 이미 이 문제가 e북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8월에 러시아의 한 프로그래머가 미국 어도비 e북을 해킹한 사건은 전세계 e북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와 함께 e북을 둘러싸고 출판사와 e북서비스업체간 소유권 문제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미국 대형출판사인 랜덤하우스와 e북서비스업체인 로제타북스가 e북을 통해 서비스하는 서적 내용을 두고 지리한 소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사실은 비록 해외 사례지만 곧 국내에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전반전이 어려움 속에서도 e북 시장의 미래 전망은 매우 밝다. 유료화 및 수익성 문제는 출판사와 e북서비스업체간 제휴가 보편화되면서 점차 해결 기미가 보이고 있다. e북서비스업체를 경쟁자로 여겨온 출판사들이 시장을 함께 키워갈 동반자로 인식을 바꾸면서 다양하고 가치있는 콘텐츠 제공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e북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돈을 내고서라도 반드시 보겠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여론조사기관인 나라리서치가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15일까지 1928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2.2%가 ‘앞으로 돈을 내고라도 e북을 볼 용의가 있다’고 응답해 눈길을 끌었다.
표준화 문제도 아직 초보단계지만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한국e북컨소시엄은 한국e북 문서 표준인 ‘EBKS’를 개발해 선보였다. EBKS는 인터넷 공용어인 XML을 기반으로 개발됨으로써 향후 미국·일본 등 해외 e북과도 호환을 갖게 된다. 특히 표준안 마련은 이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와 관련 솔루션이 상호교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도 소극적 지원에서 벗어나 점차 적극적인 자세로 전향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문화 콘텐츠를 대상으로 잇따라 전문투자조합을 결성하면서 인터넷 콘텐츠와 함께 e북을 핵심투자 분야로 명시했다.
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e북’ 등 새로운 콘텐츠 영역을 개척하는 가 하면 B2C에 이어 B2B 분야로 수요시장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e북 단말기도 곧 대거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