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지 시장 `가격 테러`

 스토리지 시장의 가격경쟁이 갈수록 혼탁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스토리지 시장은 경기부진으로 인한 수요감소와 제품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가운데 시장의 가격질서가 급격하게 파괴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기술발전과 신제품 출시로 인해 매년 10∼20% 가량 하락하던 제품가는 올해 들어 30∼50% 가량 급락하면서 서버업계의 가격경쟁 양상을 닮아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토리지 가격은 테라바이트당 1억원을 호가했다. 비교적 고가이던 EMC 제품의 경우는 1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가격에 공급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IBM 등 서버업체들도 대략 1억∼1억2000만원선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테라바이트당 7000만∼8000만원대로 떨어졌다. 더욱이 일부 국산 업체와 새로이 시장에 참여한 일부 외국계 스토리지 업체의 경우 4000만원선으로도 제품을 공급하는 양상이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이엔드 제품군보다는 로엔드 제품군에서 이같은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스토리지 관련업체인 A기업의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테라바이트당 스토리지 가격은 업체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1억∼1억2000만원대에서 거래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이보다 30∼40% 정도 하락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중소업체의 경우 4000만원대의 가격으로도 공급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이같은 사례가 빈발함에 따라 가격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은 협소한데 경쟁업체가 난립함에 따라 출혈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부 중소업체나 새로 국내시장에 진출한 업체의 경우 생존을 위한 ‘버티기’ 차원에서 가격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토리지 관련업계에서는 HW(레이드) 1000만원, 스위치(어댑터) 1000만원, 램 1000만원, 소프트웨어 1000만원으로 가정할 때 순수 원재료 비용만 4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관세·운송비·인건비 등을 포함하면 적어도 실제 가격은 7000만원선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요인은 무엇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요인으로 가격하락을 주범으로 꼽고 있다. 지난해부터 외국계 기업이 물밀 듯이 들어온 데 이어 국내 제조업체도 속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유통업체는 물론 종합상사까지 스토리지를 공급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사이몬·엑사큐브시스템·디스크뱅크·클루닉스 등 국산업체들이 새로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레이드텍·자이오텍·큐로직·스토리지네트워크 등 외국업체도 국내 리셀러를 통해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LG상사·SK글로벌 등 종합상사까지 공급전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경기부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업계 전문가들은 경기부진에도 스토리지 시장만은 견실한 성장세를 구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경기부진의 골이 깊어진데다 미국 테러사건으로 인해 세계 경제의 활력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또한 정보화 관련 예산집행을 미루는 곳이 늘고 있다. 수요처가 줄다 보니 가격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격경쟁으로 스토리지 업계도 서버업계와 비슷한 공급경쟁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한국EMC 등 대형업체보다는 중소업체나 신규 외국계 업체에서 더욱 치열한 공급전이 벌어지고 있어 내년초에는 시장재편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